대곡면(大谷面) 단목(丹牧)에는 '엄마다리'란 교량이 있었다.
새로운 다리가 생기면서 길고 납작한 돌다리는 개울 속의 모래에 묻히고 말았지만 그 이전에는 마을로 들어오는 중요한 통로였다.
옛날 단목의 옆 동네인 미천면(美川面) 반지마을에 아들 형제를 둔 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일찍 성혼하여 함께 사는데 어느 날부터 어머니가 밤이 되면 살짝 나갔다가 새벽이 되면 돌아왔다.
아들 며느리 몰래 하는 행동이라 한동안 눈치를 못 챘으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아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나갈 때는 모르겠는데 돌아올 때 보면 치마가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매번 그런 사실을 안 아들은 하도 이상하여 한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밤이 이슥하여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가자 아들도 몰래 어머니의 뒤를 밟았다.
개울에 이르자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버선발로 걸어 개울을 건넌다. 아들도 먼발치에서 이를 보고 있다가 개울을 건넜다. 차가운 물이 온 몸을 얼어붙게 한다. '이런 물을 건너다니'라고 중얼거리며 개울을 건너고 들길을 가로질러 계속 어머니의 뒤를 밟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는 마을의 홀아비가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홀아비가 기다렸다는 듯 마당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며 방까지 안내하는 것을 보고 아들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남자는 후처(後妻)를 들여도 여자는 개가(改嫁)를 금지했던 시대에 어머니에 대한 불륜을 탓하는 게 아니다. 무심한 자식들이 어머니의 마을을 헤아리지 못한 죄, 추운 개울물을 그냥 건너는 불편을 해결해 주지 못한 게 죄 서러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세상 눈이 있으니 공개적으로 관계를 인정해 줄 형편도 아니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은 형제들과 의논해 아무도 모르게 개울에 돌다리를 놓았는데 이는 어머니가 편하게 건너 다니라는 뜻이다.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져 이 다리를 '엄마다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