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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AM 03:35 2019/10/23 Wed

가화리

1914년, 진주군 오산면 가동(吾山面佳洞)가화지동(花枝洞), 신풍면 중동(新豊面中洞)일부로서 가화리(佳花里)라 하였다.

가화리 - 가화마을, 늑시골, 아랫골, 절골

옛 오산면(吾山面)의 가동(佳洞)과 화지동(花枝洞)이 지금의 가화와 서현지역이다. 1914년 행전구역 통폐합시에 병행하여, 두 마을의 머릿자를 따서 가화라 하여 명석면에 편입되었으며, 그 후 자연부락으로 개편되면서 땅은 예전대로 분리되고, 부락이름은 그대로 남아온 것이다. 가화를 보통 갈골(葛谷)로 많이 부르니 양편산에 칡이 많아 이렇게 불러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마을은 깊숙한 골이 사천만 쪽으로 길게 통하였으니, 윗마을 터앞과, 중마을 삼밭골과, 아랫마을 평지말과, 끝마을 늑시골 등 여러 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약 300여년전부터 경주김씨(慶州金氏)들이 집단으로 살아왔다.

굳개골

터앞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언제 뚫렸는지 모르나 차가 다닐수 있는 넓은길이 대평면 굳개로 통해 있었으나 지금은 묵어 버렸다.

큰시락골과 작은시락골

터앞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만리산(萬里山)

터앞 서편에 있다. 이 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만리를 바라볼 수 있으며 이곳 고로들이 어릴 때에 이 봉우리에 올라가서 쇠로 만들어진 장남감 같은 말을 더러 주워왔다고 한다.

국사봉(國士峰)

서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일명 국수봉(菊秀峰)이라고도 한다.

새미공과

튱융골재 터 앞 서편에 있는 골자기를 새미골이라 하고, 대평으로 가는 길이 통해 있어 튱융골재라 부른다

맥례골

터 앞 동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서재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다.

큰음달

국사봉 밑에 있는 음달 골짜기이다.

평고먼당

남쪽에 있는 고개길이다. 진주시 판문동으로 가는 길이다.

서현

오미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길다란 골이 시원스럽게 터져 있다. 이곳을 서재(瑞峴)라고 부른다. 원래는 이 지역이 오산면(吾山面)의 화동(花洞)이었으니 지금도 골 어구에 있는 마을을 화지동(花枝洞)이라 부른다. 서현이라는 지명은 골막마침에 가화로 넘어가는 재가 있으니, 옛날에 어느 귀인(貴人)의 행차가 이곳에 쉬어갔음으로 영광스러운 고개라하여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대로가 나기 전에는 덕산, 함양지방의 공물(貢物)과 세미(稅米)가 이 고개를 통하여 사천만(泗川灣)으로 갔음으로 인마(人馬)의 발길이 날마다 끊이지 않았으며, 이에따라 이 고개에는 큰주막이 있어 많은 길손들이 쉬어갔다고 한다. 이 마을은 제일윗편에 하지막골, 중간에 아랫골, 끝에 점골 등 셋 촌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시루봉

하지막골 서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시루모양으로 생겼다.

절터

시루봉 밑에 있으니 예전에 절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폐허에서 기왓장이 나온다.

만새미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만새미란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큰점골

옛날에 그릇을 굽는 옹기굴이 있었다고 한다.

호박골

하지막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갓골

하지막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장군무덤

하지막골 앞중산턱에 있는 고총이다. 옛날 어느 장군이 무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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