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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민장군 전공비(金時敏將軍戰功碑)

이미지 갤러리

  • 명칭 : 김시민장군 전공비(金時敏將軍戰功碑)
  • 주소 : 남강로 626(본성동) 길찾기 복사
  • 관리기관 : 문화예술과 문화유산팀
  • 전화번호 : 055-749-5312
  • 이용료 : -
  • 문화유산지정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이용시간 : -

소개

김시민장군(金時敏將軍)의 전공을 기록한 이 석비는 일명 진주 전성각적비(晋州全城却敵碑)라고도 한다. 이 석비는 현재 진주성내(晋州城內)의 계사순의단 앞<옛날에 충민사(忠愍祠)가 있

김시민장군(金時敏將軍)의 전공을 기록한 이 석비는 일명 진주 전성각적비(晋州全城却敵碑)라고도 한다. 이 석비는 현재 진주성내(晋州城內)의 계사순의단 앞<옛날에 충민사(忠愍祠)가 있었던 자리>에 단층맞배지붕의 비각을 마련하여 보존하고 있다.

김시민(金時敏 1554∼1592)은 조선(朝鮮) 중기의 무신으로 1578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시하였으며, 1591년 진주판관(晋州判官)이 되었다가 이듬해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목사 이경(牧使 李璥)을 대신하여 목사직(牧使職)을 승계하였다.

먼저 공은 성안의 백성들을 위무(慰撫)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 성을 수축하였으며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그해는 정식으로 진주목사(晋州牧使)에 취임하여 병기를 정비하는 등 성을 지키는 방책을 강구하였다.

또, 9월에는 진해로 출정하여 적을 물리치고 적장 다하라〔平小大〕를 사로잡는 등 전공을 세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慶尙右道 兵馬節度使)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6일 왜적은 진주성(晋州城)이 전라도로 통하는 경상우도(慶尙右道)의 요충이어서 경상우도의 주력이 이곳에 있음을 알고 공격하자 성중의 부녀자와 노약자까지 적과 대적하니 적군은 2만여 대군이었으나 아군은 3,800여 명에 불과하였다. 6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적을 물리쳤으나 이 전투에서 공은 적탄에 맞아 점차 상처가 깊어 갔지만 이를 비밀로 하여 최후까지 국사를 근심하는 등 충절을 다하다가 수일 후 진중(陣中)에서 순국하였다. 그 후 1604년에는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추록(追錄)되었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비석의 형태는 조선시대 일반형 석비 형태이다.
성균관 진사 성여신(成汝信)이 글을 짓고 성균관 생원 한몽인(韓夢寅)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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