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32년(1450)에 나서 연산군 11년(1505)에 세상을 떠나신 조선조의 문신으로 자는 용휴이며 진주강씨 좌찬성 강희맹의 아들이다. 특채로 군기지 주부가 되었고 돈영부 첨정을 거친 뒤 성종 10년(1479)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정, 좌통례를 거쳐 성종 16년(1485) 상주목사가 되고 이어서 판결사, 부제학, 도승지를 거쳐 연산군 3년(1497)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무오사화 때 대사헌으로 김일손 등을 가볍게 벌주도록 주장하였다. 이어서 이조, 병조, 형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연산군 6년(1500) 진원군에 봉작되고 세자 책봉의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온 뒤 좌찬성이 되었다. 연산군 11년(1505) 우의정에 올라 등극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는 도중 평안도의 노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숙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