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반조라 하여 가을의 단풍철에 저녁노을의 햇빛이 수정봉의 단풍에 부딪치는 아름다움에 더욱이 저녁제를 지내는 연화사 종소리가 신비한 조화를 이루면 가히 진주12경의 하나라 할 것이다.
풍수지리설에 순천봉(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뜻)이 시내 복판에 앉았으면 이 도시는 굉장하게 발전하고 잘 산다고 했다. 옛날 어느날 새벽에 신선이 순천봉을 어깨에 메고 말띠고개를 넘어오고 있었다. 지금의 봉래 초등학교 (옛날 대안면) 앞에 새벽 일찍 빨래하던 아낙네가 신비스럽게도 큰산을 메고 오는 노인을 보고서는 깜짝 놀라서 "아이구 저 노인이 산을 메고 온다."고 그만 고함을 질러 버렸다.
그러자 이 소리를 들은 신선이 혀를 차면서 "이 요망한 계집 같으니, 하늘의 뜻이 이러하다면 할 수 없지"하고 산을 내려놓으니 바로 지금의 수정봉이다. 신선은 몇 번이고 순천봉을 뒤돌아보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 순천봉이 진주 복판에 앉았으면 복 받았을 것인데-"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도 진주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비옥하고 문물이 다 갖추어 있고 가장 풍성한 도시인 것은 택리지에도 적혀 있다.
그러나 순천봉이 진주시의 변두리에 앉아 졌으니 도시는 이상하게도 더 커지지 않고 꼭 옛날 그대로 모습을 지키는 고전적인 전통도시가 되었다. 순천봉에는 몇 천년부터 가야사람들이 살았고 가야시대의 무덤도 남겨 놓은 좋은 터요, 절도 있고 교회도, 서제 학교 연계재 경로당도 있어 비봉산 망진산과 더불어 순천봉은 삼대의 진주명산이다.
천리(天理: 하늘의 이치)는 순천봉을 그대로 두지 아니 하였다. 애당초에 순천봉은 진주의 한복판에 세워 두려는 것이 하늘의 뜻이었다. 이제 와서 다시 순천봉은 하늘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주의 도시 위치를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서쪽으로는 시내와 평거 판문동을 바라보고, 남으로는 칠암벌과 가호, 정촌을 이어주고 동으로는 상대 상평동을 개척하고 있어 이제는 저절로 순천봉이 진주의 한복판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천지의 조화와 민심이 일치될 때 순천(하늘의 듯에 따른다)의 깊고 큰 원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살아서 움직이는 순천봉의 참된 뜻만큼 진주 사람들의 마음도 뻗어가고 착하게 살며 이 고장 진주도 내일의 복을 받을 것이다.진주사람들은 신선이 와서 순천봉을 메고 가지 않도록 치성을 올려야 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