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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기생 산홍(山紅)

작가명 傳 채용신
제목 < 팔도미인도> 中 산홍
출처 OCI미술관 소장

진주기생 산홍(山紅)

예부터 ‘북평양 남진주’라고 불릴 만큼 진주 기생은 조선8도에서 그 명성이 자자했다. 진주 기생들의 가무는 조선 제일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뛰어나 왕실에서 베풀어지는 잔치에 불려나간 명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진주 기녀들 중 산홍은 한말의 애국선비 매천황현이 지은 ‘매천야록’에서 만날 수 있다. 매천야록 광무10년(1906) “진주기생 산홍은 얼굴이 아름답고 서예도 출중했다. 이때 이지 용이 천금을 가지고 와서 첩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자 산홍이 사양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대감을 5적의 우두머리라고 하는데 첩이 비록 천한 기생이나 사람 구실하고 있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 라고 하여 크게 노한 이지용이 산홍을 때렸다는 기록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지용은 1905년 내무대신으로 을사조약에 적 극 찬성하여 조인에 서명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이다. 이 일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절개를 칭찬해 마지않았으며, 매천 황현도 산홍의 기개를 높이 사 세상에 전하기 위해 그때의 일을 기록해두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진주 기생들은 의기 논개의 충절을 사모하였는데, 산홍 역시 논개사당인 의기사를 참배하고 시 한 수를 남겼다.

역사에 길이 남을 진주의 의로움
  두 사당에 또 높은 다락 있네
  일 없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
  피리와 북소리 따라 아무렇게 놀고있네.

이러한 산홍의 시는 의기사 현판 왼쪽에 걸려있다. 기생을 매춘녀와 동일시 여기는 것은 현대에 와서의 일이다. 일제 강점기때 까지만 하더라도 기생은 의식이 살아있는 신여성이라고 볼 수 있고, 남몰래 독립운동에 헌신한 의기있는 기생 들이 많았다. 실제로 산홍 또한 “기생 줄 돈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피 흘리는 젊은이에게 주라”며 친일파 인사를 꾸짖었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비록 사람들에게 논개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산홍과 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했던 많은 진주기생의 호국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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