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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리(東山里)

동산리는 진성면 상촌리와 가진리 사이에 있어 서쪽으로는 금산면, 동쪽으로는 사봉면을 접경하고, 동산, 월정 2개 행정 단위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1970년대에는 남해안 고속도로가 개설되어 마을 중심을 통과하며, 1990년에는 고속도로 진입로(인터체인지)가 준공되어 동부의 교통중심지대가 되었다. 마을 서쪽에는 월아산 양봉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으며, 동쪽에는 남강지류인 목계천(木溪川)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월아산 양봉 산록에 농업용 저수지가 두 곳이나 있어 수심이 깊고 물이 맑아서 유명하다. 조선조 진주목시대에는 반동산리(班東山里)였는데, 1895년 지방관제개정에 의하여 가좌촌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좌촌면 중촌동(中村洞)·하촌동(下村洞)과 내진성면 천곡동(泉谷洞) 각 일부로서 중촌리(中村里)라 하여 진성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는 중촌리를 동산리(東山里)로 개칭하였다.

동산(東山)

동산 마을은 동산리 동편에 있어 농가 98호, 비농가 10호로서 주민 359명이 5개 땅으로 분산 거주하고 있다. 여러 성씨가 모여 살며 미맥 위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강점기에는 신평(新坪)이라 하다가 광복 후에 동산으로 개칭하였다. 마을 중앙에는 고속도로 진입로(인터체인지)가 있으며, 남북으로는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풍수지리학설로 예로부터 월아산 남쪽은 봉황(鳳凰)설이고, 북쪽은 천마(천馬)설이라하여, 세조 때의 영의정 강맹경(領議政姜孟卿)이 태어난 곳이며 좌찬선 강홍(左贊成姜渾)등 많은 대감(大監)들이 살았으므로 조정인재반재동산리(朝庭人材半在東山里)라는 설이 있다.

배망골

반야재(盤野齎)가 있는 골짜기이다. 판서 강혼(判書姜渾)의 묘가 있으며, 월아산 팔 명지의 하나라 한다.

되내기

동쪽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가장골

1980년에 생긴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임시매장 하던 곳이라고 한다.

문특골 또는 뒷뫼

마을 북쪽에 있는 언덕이다.

똥매산

동쪽에 있다. 야중산이라고도 한다. 고속도로가 나면서 없어졌다.

평구들

동쪽에 있는 들녘이다.

신기(新基)

북동쪽의 새동네이다. 현지 주민들은 샛터삣달이라 한다.

나무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남강지류이다.

굽우쏘

목계천(木溪川)이 굽이쳐 흐르면서 수심이 깊은 곳을 말한다.

섭지서

동쪽에 있다. 비만 내리면 침수되는 지역이다.

칠성바위(七星岩)

마을 전역에 7개의 바위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경지정리와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5개는 없어지고 지금은 2개만 남아 있다.

섬다리

동쪽 목계천 토석다리이다.

나무내들

모계천변의 평야지이다. 경지정리가 잘된 곳으로 들 가운데에는 큰 양배수장(양排水場)이 설치되어 있고, 길이 400여미터의 고가(高架) 양수로가 남북으로 가설 되어있다.

대추나무주막

동쪽 하천변에 있던 주막이다. 1930년대 이전의 한 시절에는 유명한 주막거리 였다고 한다.

산임이들

배망골 앞들이다. 마을 북쪽에 있다.

소끼비(沼基)

목계천변 늪지대이다.

한내들

옛날에는 월아산에서 흘러오는 물이 중촌리 중심으로 흘렀으나 지금은 완전히 평야지대가 된 들판이다.

대장꺼리

북쪽도로변에 옛날부터 대장간이 있었다고 한다.

황동(篁洞)

서북편에 있는 마을이다. 큰대밭 동네라 한다.

큰골

동산 서북편에 있는 마을이다. 문경공 영의정 강맹경(文景公領議政姜孟卿)의 태소동(邰所洞)이라 한다.

청다리거리

큰골 앞에 있다. 청석(靑石)으로 만든 다리이다. 지금은 새마을 사업으로 없어지고 시멘트 다리이다.

뒷매산

황동마을 후산이다.

동산제언(東山堤堰)

지금의 한내 보(洑) 인 것 같다.

들터

동산마을 중심으로 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곡물 및 사료 등 큰 창고가 있 다. 1991년에 우성사료창고가 건립되었다.

월정(月井)

월정 마을은 월아산(月牙山) 동남쪽 중촌리 서편에 위치하고 농가57호, 비농가 15호로서 주민 212명이 미맥을 주 생산물로 하여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으나 5개 땀으로 분산 거주하고 일제시대에는 정도(鄭斗) 마을이던 것을 광복후 월정으로 개칭하였다. 이 명칭은 월아산과 마을 중심지에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어 동민 의사에 다라 월정이라 명명한 것이다.

정두마을(鄭斗里)

조선조 역학자 정두(鄭斗)선생이 살던 곳이고, 재령이씨(載寧李氏)의 세거장(世居庄)이다.

정돌정(鄭突亭)

선조 37년(1604)에 동민들이 건립한 정자 자리다. 정두선생을 비롯하여 거경(巨卿)들이 모여 놀던 곳이라 한다(진양지에 보임). 지금도 현지 주민은 정도리라 한다.

들새미

마을 앞에 있는 우물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가뭄이 심하면 전 동민이 이용하던 우물이다.

용고미(龍顧尾)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용이 꼬리를 돌아보는 모습이라한다. 함양박씨(함陽朴氏)가 자리잡은 곳이다.

산골(山谷)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주민 10여호가 살고 있다.

허목골 허항(墟項)

서북쪽에 있는 동명이다 주민 20여호가 살고 있다.

분매골(盆梅谷)

북쪽에 있는 동명이다. 주민 10여호가 살고 있다.

월아산(月牙山)

서쪽에 있는 산이다. 진주·진양에서 최고봉인 장군대와 국사봉이 있다.(금산면 조에 자세하다)

장군대

임진왜란시 봉화대 및 군기수리소(軍器修理所)인 대장간터가 있다. 해발 482m이다.

용고미못(龍顧尾池)

마을 남쪽에 있는 소류지이다. 1960년대에 정부 보조금과 몽리민 부담으로 만든 못이다.

국기봉(國祈峯)

월아산 북편 봉우리로 장군대와 높이가 대등하며, 산 정상에 무지개터가 있어 묘(墓)를 건드리면 재상(宰相)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1960년대 이전에는 많은 암장(暗葬)과 투장(投葬)이 있었고, 한발이 심하면 월아산 주위의 주민들이 묘를 파내고 기우제를 드린 곳이다.

길매재

월아산의 고개이다. 진주, 금산면으로 통하는 대로 였으며 달음산 고개라고도 한다.

성지골(丞旨谷)

월아산 음지에 있다. 옛날 승지(丞旨)벼슬한 사람이 쉬어갔다 한다.

새미등

월아산 음달에 있는 골짜기이다. 찬물샘이 있다.

은지골·신선바위·시천등·산지골·쐬기듬·고개뻔덕·홍들깨동·딱밭골

월아산 음지쪽에 있는 지명이다.

고개양달·진등·조막산뻔덕·쇠꼴등·널바위등·터골안·평고얍딱·평풍바위·제갓

월아산 양지쪽에 있는 지명이다.

개낭골

마을 서쪽 산골과 허목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이안장(里案藏岩)

분매골(盆梅洞) 앞에 있다. 임진왜란 때 인근 각 성시들이 각자 족보를 바위속에 보관했다 한다. 현재 이 바위 속에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재령이씨(載寧李氏), 함양박씨(咸陽朴氏), 진양강씨(晋陽姜氏), 곡부공씨(곡阜孔氏), 전주전씨(全州全氏), 금산김씨(錦山金氏), 진양정씨(晋陽鄭氏), 함안이씨(咸安李氏)의 보책이 보관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3일에는 위의 씨족대표들이 이곳에 모여서 행사를 한다.

농바구

장군대 아래 농짝 같은 2개의 바위이다.

은지보

희목골 앞에 있는 보(보)이다. 예전의 허항제언(虛項堤堰)이다.

어정승묘(魚政丞墓)

용고미 마을 뒤에 있다. 고총(古塚)인데 1960년대에 동경(銅鏡)이 나왔다.

약새미

용고미 마을 뒷산에 있는 약수천이다(藥水泉)이다. 지금은 마을 상수도로 이용한다.

버들배기

월아산 장군대 동편 중턱에 있다. 류방사 절터 주위이다.

나만골

남쪽에 있다. 고지대여서 천수답이 많으므로 모심기나 추수를 제시기에 못하므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사장골

용고미 마을 뒤에 있다. 옛날 공부자(孔富者)가 살았다는 설이 있다.

서재골(書齎谷)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1940년대까지는 재사(齎舍)가 있었다.

산밭골

대마전(大麻田)이 많았던 곳이다.

조밭골

조를 많이 심던 골짜기이다.

마직골

월아산 중턱이다. 1940년대까지는 주민들이 문산·사천 시장을 보기 위해 주민이 다니는 길목이다. 주인을 마중한다는 뜻이다.

되새미

남쪽 산중턱에 있다. 되만한 샘이 있다.

쉿뻣탄

월아산 중턱에 있다. 목동·초부들이 쉬는 곳이다.

앞봉산(前峯山)

마을 남동쪽에 있는 산이다.

웃골(上谷)

용고미 뒷골이다. 1910년대까지 간암 박태형(艮암朴泰亨)의 서당이 있어 많은 제자들이 강학(講學)하던 곳이다.

진등·우미등·배무등·주개등·수구덤·홍등깨등·널바위·쌍두바위·범바위·터안골·널바위·기차바위

마을 서쪽 월아산 양달에 있다.

깃대봉

월아산 장군대봉 서편에 자리한 최고봉으로 1955년에 한국방송공사에서 통신탑 2개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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