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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리(龍岩里)

용암(龍岩)

용댕이, 조선조 전기 때 진주목 속방의 북면 설매곡리(雪梅谷里)의 감암동(甘巖洞) 감바우이다. 1864년(고종 1년)리가 면으로 개편됨에 따라 설매곡면(雪梅谷面)이 되고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상감(上甘), 중감(中甘) 일부를 병합하여 용암리(龍岩里)라 하여 미천면(美川面)에 속하였다가 1983년 2월 1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곡면(大谷面)으로 편입되었다. 동쪽은 의령군 칠곡면, 남쪽은 월암리, 서쪽은 미천면 어옥리, 북쪽은 미천면 상미리이다. 용암리 용당(龍塘), 정자(亭子), 부치골(불곡佛谷), 사곡(寺谷) 땅을 통털어 용암리라고 한다.

감바우

감암동(甘岩洞)이다.

용당(龍塘)

용댕이, 용암 서쪽에 있는 땀이다. 옛날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하여 용당, 용댕이라고 한다.

용댕이

용덤(中甘洞)이다.

용덤

용댕이와 같다.

용당골(龍塘谷)

용암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 안에 채정승(蔡政丞)묘가 있다. 묘에 있던 석물(石物)을 없애버려 후손이 서울에서 말을 타고와서 묘를 찾지 못하고 그 밑에서 절만하고 돌아갔다고 하는 설화가 있다.

용덕산(龍德山)

용암 북쪽에 있는 산이다.

용당고개

용암에서 북쪽 미천면 상미리로 가는 고개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붓으로 쳐서 산이 갈라졌다고 한다.

감암사(甘巖寺)

봉대사 아래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옛날 감암사 윗쪽에 암자가 있었다. 경주김씨(慶州金氏)가 아들을 낳지 못하여 매일 그 암자에 불공(佛供)을 드려 아들을 낳았다. 그로 인하여 절을 지은 것이 감암사이다. 절에 빈대(?)가 너무 많아서 폐사되었다고 한다.

정자안(亭子洞)

정자안. 용암동쪽에 큰 정자나무가 있다.

정자(亭子)

약 450년 전 느티나무, 옛날 장사(壯士)라는 힘센 김해김씨(金海金氏)가 호랑이를 잡아 이 정자나무에다 달아 매었다고 한다.

불곡(佛谷)

부처골. 용암쪽에 있는 마을이다.

부처골

부처골. 옛날 부처가 나왔다고 하여 부처골이라 한다.

정자안골

정자동 안골짜기이다.

돌구재

용암사 서쪽 미천면 상미리로 가는 고개이다.

고집재

질등이라고도 한다.

봉대사(鳳台寺)

절골안에 있는 절이다.

꺼덕바우

용당골 돌구재로 가는 길목에 있다. 흔들면 꺼떡꺼떡한다고 한다.

포리대가리

꺼떡바위 위에 있음, 꺼떡바위 위에 파리가 앉아있는 형태라고 한다.

비네바우

꺼떡바위 옆에 비네같이 생긴 바위이다.

당산(堂山)

서낭고개에 큰 소나무 밑에 있는 돌무덤이다. 옛날 남편이 공부만 하고 살림을 돌보지 않자 집을 나갔던 부인이 남편이 과거에 급제하여 영화를 누리게 되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목매어 죽은 자리라고 한다.

서낭당

절골 북쪽 미천면 상머리로 가는 고개, 옛날 이 고개를 넘어설 때 오고가는 사람마다 돌을 던져 잡신을 없애게 하였다고 한다.

니우재

의우령(議友嶺) 용댕이에서 미천면 어옥리로 가는 고개. 옛날 용댕이(龍岩)와 늘억실(於玉里)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마다 이 고개에서 단판을 지었다고 한다.(문제의 고개)

천황산(天皇山)

용암 동쪽 황대촌 뒤에 있는 산이다.

상투바우

천황산 먼당(上峰)에 있음. 의령군에 있는 사람이 상투바위를 쳐서 무너뜨리닌 바위에서 피(血)가 솟아났다고 한다.

구시 평정

구시 평정(平庭) 용덤에서 약 300m 서쪽으로 산먼당(上頂)에 있다. 용덤에서 용마(龍馬)가 나서 구시 평정(소 구시 같이 생긴 곳)에서 죽을 먹고 살다가 주인을 기다렸으나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주인을 찾아 달비실, 던진동, 풍덤이로 돌아다녔다가 다시 용덤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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