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천전동 사무소


내 고장 유래

연혁

본래 진양군(晉陽郡) 섭천면(涉川面)의 지역으로서 남강(南江)의 앞쪽이 되므로 내앞 또는 천전(川前)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천전리(川前里)라 하여 내동면(奈洞面)에 편입되었다가 1939년 일제시대 명치정(明治町)으로 천전동(川前洞)에서 분할되었고, 1949년 망경동(望京洞)으로 개칭되었으며, 1954년 망경남·북동으로 분할되었다가 1990년에 다시 망경동으로 통합되었다.

주약동(株藥洞)

본시 진주군(晋州郡) 섭천면(涉川面) 약동(藥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에는 나동면(奈洞面) 주약리(株藥里)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에는 진주읍(晋州邑)으로 편입되었다. 1949년 8월 15일에는 주약동(株藥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망경동(望京洞)

본시 진주군(晋州郡) 섭천면(涉川面) 천전동(川前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에는 내동면(奈洞面) 천전리(川前里)라 하였다. 1918년 5월 1일에는 진주면(晋州面)으로 편입되고, 차츰 도시화되면서 1932년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명치정(明治町)이라 하였다. 1949년 8월 15일에는 망경남·북동(望京南·北洞)이 되고, 1990년 4월 1일에는 이를 통합한 망경동(望京洞)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혁

강남동(江南洞)

본시 진주군(晋州郡) 섭천면(涉川面) 천전동(川前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에는 내동면(奈洞面) 천전리(川前里)라 하였다. 1918년 5월 1일에 진주면(晋州面)으로 편입되었고, 차츰 도시화되면서 1932년에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대정정(大正町)이라 하였다. 1949년 8월 5일에는 강남동(江南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혁

칠암동(七岩洞)은 본시 진양군(晉陽郡) 섭천면(涉川面) 천전동(川前洞)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에는 내동면천전리(奈洞面川前里)라고 하였다. 1918년 5월 1일 진주면(晉州面)으로 편입되고, 차츰 도시화 되면서 1932년에는 일본에 의해 일본식 이름인 소화정(昭和町)으로 칭해지기도 했다. 지금의 칠암동은 1949년 8월 15일 동명변경에 의해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지금의 경상대학교 병원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사이에 일곱개의 바위가 있어 「치리미」라고 불리어지던데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칠암동 지역 발전사

진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진주지명사에 나오는 「치암이나루터」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일개 나루터에 불과하던 곳이 오늘날 우리시에서 가장 살기 좋고 생활여건이 양호한 곳으로 발전되어온 곳으로 지역개발을 통한 우리 칠암동의 발전사를 살펴본다.

  • 1948.05.10 : 천전공설시장이 개설되므로서 지역발전의 토대가 마련됨
  • 1969.10.03 : 진양교가 준공되어 칠암동과 도동간의 왕래가 뱃길에서 육로로 바뀜(2001년부터 왕복4차선에서 6차선으로 확장계획임)
  • 1980 : 남강구획정리사업을 통해 도시기반시설의 기틀을 갖춤
  • 1984 : 칠암 강변도로 개설로 교통망이 크게 확충되었음
  • 1987 : 경상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개원
  • 1988 : 경남문화예술회관 건립으로 문화예술공간 확보
  • 1993 : 강변도로를 「 남가람 문화거리 」로 지정 개발하여 도심속의 공원조성
  • 1995 : 강변도로 2차선 → 4차선으로 확장
  • 1999 : 구. 대동기어 자리에 780여세대의 대규모 금호석류마을 APT 입주로, 명실 공히 칠암동이 우리시 최고의 주거·문화·휴식공간을 갖춘 지역으로 발돋움함

담당자 :
천전동 055)749-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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