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금산면 사무소


내 고장 유래

연혁

조선조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동면(東面)금산리(琴山里)·대여촌리(代如村里)·월아미리(月牙彌里)·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대여촌리(代如村里)·월아미리(月牙彌里)는 금산리(琴山里)에 합하여금산리(琴山里)·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순조 32년(1832) 이래로는 다시 금산리(今山里)·대여촌리(代如村里)·조동리(槽洞里)라 하였고, 고종 1년(1864) 이래로는 금산면(琴山面)·대여촌면(代如村面)·조동면(槽洞面)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1일, 진주군(晋州郡)대여촌면(代如村面)·금산면(金山面)·조동면(槽洞面)을 통폐합하여 금산면(琴山面)이라 하였다.

그리고 대여촌면(代如村面)남성동(南星洞)·기동(基洞)·가방동(加芳洞)·사동(사洞)각 일부로서 가방리(加芳里)라 하고, 대여촌면(代如村面)가방동(加芳洞)·사동(사洞)·금산면(琴山面)중촌동(中村洞)각 일부로서 장사리(長沙里)라 하고,대여촌면(代如村面)용심동(龍심洞)·금산면(琴山面)월아동(月牙洞)·중촌동(中村洞)일부로서 용아리(龍牙里)라 하고,금산면(琴山面)개천동(介川洞)·중촌동(中村洞)·미암동(未岩洞)각 일부로서 중천리(中川里)라 하고,금산면(琴山面)백동(栢洞)일부로서 송백리(松栢里)라 하고,금산면(琴山面)백동(栢洞)·조동면(槽洞面)속사동(束莎洞)각 일부로서 속사리(束莎里)라 하고,조동면(槽洞面)호암동(虎岩洞)·갈전동(葛田洞)·속사동(束莎洞)각 일부로서 갈전리(葛田里)라 하여,금산면(琴山面)은 7리(里)로 개편되었다.

1987년 1월 1일에는 대곡면(大谷面)와룡리(臥龍里)일부를 가방리(加芳里)로 편입하고,가방리(加芳里)일부를 대곡면(大谷面)단목리(丹牧里)로 이속하고, 집현면(集賢面)덕오리(德梧里)일부를 장사리(長沙里)로 편입하였다.

그리하여 금산면(琴山面)은 7리(理)를 소관하고 있다.


담당자 :
금산면 055)74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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