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문산읍 사무소


내 고장 유래

연혁

조선조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법륜리(法輪里)·굴곡리(屈谷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法輪·屈谷里는 조동리(槽洞里)에 합하여 槽洞里라 하였다.

순조 32년(1832) 이래로는 소촌리(召村里)·갈곡리(葛谷里)·조동리(槽洞里)(일부)라 하였고, 고종 1년 1864) 이후 구한말 때까지는 召村面(갑오경장 이후 文山面으로 개칭)·葛谷面·槽洞面(일부)이라 하였다. 1914년 4월 1일, 진주군(晋州郡) 문산면(文山面)·갈곡면(葛谷面)과 조동면(槽洞面)·이곡면(耳谷面)·송곡면(松谷面) 각 일부 등을 통폐합하여 文山面이라 하였다.
그리고 文山面 二洞·一洞·槽洞面 갈전동(葛田洞)·속사동(束莎洞) 각 일부로서 소문리(蘇文里)라 하고, 文山面 상이동(象耳洞)·一洞일부로서상 문리(象文里)라 하고, 文山面 三洞일부·耳谷面제곡동(堤谷洞)으로서 三谷里라 하고, 文山面 三洞·松谷面정자동(亭子洞)·耳谷面 어수동(漁藪洞)·耳谷洞각 일부로서 耳谷里라 하고, 葛谷面 外洞·東谷洞·松谷面 松谷洞 일부로서 안전리(安全里)라 하고, 葛谷面內洞·上村洞으로서 葛村里(갈촌리)라 하여 6里로 개편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정촌 면 (井村面) 옥산리(玉山里)와 동물리(冬勿里)가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1일에는 시조례 제132호('95.02.28공포)에 의하여 邑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11월 1일에는 시조례 제149호('95. 10. 17공포)에 의하여 갈촌리(葛村里)는 갈곡리(葛谷里)로, 동물리(冬勿里)는 두산리(斗山里)로 개칭되었다. 그리하여 文山邑은 8里를 소관하고 있다.


담당자 :
문산읍 055)749-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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