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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산

방어산

해발 531m로 괘방산과 접해있으며 함안군과 경계를 이루고 산의 형태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산 정상에는 마당바위, 기차굴, 흔들바위, 우물등이 있어 봄,가을에는 외지의 많은 등산객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산 위에는 석성이 있고 산 서쪽에는 장군당이 있으며 아래에는 마제현이 있고 북쪽에는 장군의 철상이 있으며 동쪽에는 고사의 유기가 있다. 세상에 전하기로는 홍무십일년, 봄에 왜병이 반성에 침입하여 이 산정에 올라와서 책을 세우고 스스로 보전하려 하니 상원사 우인열이 박경수, 오언과 더불어 합하여 에워싸고 공격하여 목 삼십사급을 베었다고 한다. 혹은 말하기를 이절 이름을 망일암이라 하였고 장군의 성명을 목신우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군은 효용이 절인하고 두 겨드랑에 날개가 있어 깍아지른 듯한 구렁을 날아서 오르며 힘은 능히 삼백근이나 되는 활을 당기더니 마침 왜적의 대란을 만났다. 장군은 군사 삼천명을 거느리고 또 승인 혜성이라는 사람을 얻어 성으로 가서 산정을 지키면서 적이 이르는 것에 대비하고 앞 봉수리를 바라보고 진을 쳤다. 장군은 성벽을 굳게 닫고 몇 달을 나오지 아니하다가 천 개의 활을 쏠 것을 명령하니 대전이 비오듯하여 맞은 자는 불타죽고 죽은자가 삼대와 같았다. 적은 신병이라고 하여 물러나 도망하니 당시에 사람들이 이를 사모하여 장군과 혜성의 유상을 만들어 모시고 철마십여필도 바위 위에 남겨두었다. 이리하여 말들과 싸움에서 흘린 피가 지금까지 석면에 아롱져 있어서 옛발자취가 완연한 것이 어제와 같다. 산을 방어라고 일컷고 봉우리를 산성이라고 이름하여 재에 마제라는 것이 있고 리를 승어라고 이름한 것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방어산은 이름그대로 6.25사변시에는 괘방산과 같이 방어선을 구축하여 적을 선멸한 산이기도 하다.

주요등산로 다음과 같다 청담리 토실마을-관음사-마당바위-방어산정상-제1헬기장-제2헬기장-제3헬기장-임도-청원리 지철마을이며 7㎞정도에 2.5시간 정도 소요된다.

청원리이씨고가(淸源里李氏古家)

청원리이씨고가(淸源里李氏古家)

  • 지정번호 : 경남 문화재 자료 제107호
  • 소재지 :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 지정일자 : 1985년 1월 4일
  • 건립시기 : 1880년(고종 17년)

본 고가(古家)는 고종(高宗) 17년 경진년(庚辰年, 1880)에 청호공(淸湖公)이 안채 8칸 겹집을 건립하였으나 그동안 사랑채 등 건물 3채는 허물어져 없어지고 현재 안채8칸, 사랑채 5칸, 곡간채 3칸, 헛간 6칸, 대문채 3칸이 잘 보존되어 있다.

배치형태는 안채와 사랑채가 일자형(一子形) 평면으로 앞뒤로 나란히 있고 사랑채 주위에 헛간, 대문채들이 ㅁ자형으로 놓어져 전형적인 부농(富農)의 남부형(南部形) 민가(民家) 형태를 나타낸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5량구조 팔작지붕이다.

대청 후면으로 통풍에 유리하도록 판벽(板壁)과 판문(板門)으로 처리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격자(格子)를 설치하여 제사용구(祭祀用具)를 수장하는 기능을 가지는 점으로 의례용(儀禮用) 공간으로 확대되었다.

동강선생문집책판(東岡先生文集冊板)

동강선생문집책판(東岡先生文集冊板)

  • 지정번호 : 경남 유형문화재 제162호
  • 소재지 :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용강서당)
  • 지정일자 : 1979년 12월 29일
  • 규모 : 318매
  • 재료 : 목판
  • 시대 : 조선시대

이 책판은 조선조 명종(明宗), 선조(宣祖) 때 중신인 문정공 김우옹(1540~ 1603)이 선조(宣祖) 18년(1590)에 편찬한 역사책이다. 주자가 만든 강목(綱目) 에 그 규모와 체제를 따랐으나 그것과는 상략(詳略)이 같지 않으며 시각이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 허목(許穆) 등이 이 속강목(續綱目)에 대하여 세교(世敎)에 필요한 저술이라든지 치란벽사(治亂抗邪)의 설명이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는 좋은 저서라고 평하고 있다.

순조(純祖) 1년(1800)에 청천서원(晴川書院)에 사액을 내리면서 이 속강목의 광포의 뜻을 밝히자 동왕 8년(1808)년에 경상도 사림들이 간행발의를 일으키어 간행을 하였다. 동강 선생(東岡先生)이 손수 만든 책은 12책이었으나 편질(編帙)이 많기 때문에 매책을 상, 중, 하로 나누어 모두 36권으로 나누었고 범례는 동강이 원고를 만들 때부터 없었기 때문에 다시 만들지 않고 간행하였다. 이 같은 사실은 그의 후손인 김한동(金翰東)이 1808년에 쓴 간행전미발문(刊行顚未跋文)에 밝혀져 있다.그 후 1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판이 썩고 벌레가 먹어서 다시 인출(印出)할 수 없어서 1924년 그의 후손인 김성림(金聖林)이 이를 간행하고자 하니 경상도 유림들은 대구(大邱)에서 도회(道會)를 열고 적극적으로 이 출판을 돕는 결의를 하였다. 이렇게 해서 다시 간행한 것이 여기 있는 속강목 책판이다.

김우옹은 조선 선조(宣祖)때의 명신이며 자(字)는 숙부(肅父), 호(號)를 동강(東岡)이라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22년(1567)에 문과에 급제 홍문정자, 병조참판, 한성좌윤, 대사성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고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저서로는 동강집(東岡集)이 있다.

용강서당(龍江書堂)

용강서당(龍江書堂)

  • 지정번호 : 경남 문화재 자료 제64호
  • 소재지 :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
  • 지정일자 : 1983년 8월 6일
  • 건립시기 : 1902년 일제시대

본 서당은 조선(朝鮮) 명종(明宗), 선조(宣祖) 양대(兩大)에 걸쳐 이조판서(吏曹判書)와 대제학(大提學) 및 경연관(經筵官)을 역임하여 문정공(文貞公)의 시호(時號)를 받은 동강 선생 김우웅(金宇)선생의 학업(學業)을 기리기 위하여 1902년 지방 유림(儒林)들이 창건하였습니다.

동강 선생은 이퇴계(李退溪), 조남명(祖南冥) 선생에게 수학하여 문장과 도학으로 명망을 높이고 20권의 문집(文集)과 속강목(續講目) 36권을 저술하였습니다. 특히 속강목은 동양사에 대한 저술로 후세 사학도(史學徒)에게 크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문정공(文貞公)의 문집 판각(板刻) 600여매가 경북(慶北) 성주(星州)의 청주서원(晴州書院)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1922년 이곳에 굉정각이란 서고(書庫)를 건립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 전체 배치는 크게 강학공간, 사당, 판각을 보관한 전각의 3부분으로 구획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강학공간은 제일 앞에 놓여지고 서당을 중심으로 재(齋)가 놓여지는 ㅁ자형 배치를 보이는데 여기서는 재(齋)가 생략된 형태입니다. 그 뒤로 사당과 전각이 나란히 옆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 구조이며 익공계의 굴도리 형태를 한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양쪽방으로 대칭으로 4짝 들어 열 개 분합문은 창살의 구성이 상당히 독특하며 아름답습니다. 정원사의 편액이 있는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구조이며 익공대신보아지가 사용된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담당자 :
지수면 055)749-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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