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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만 쓰이는 절기, <나막신쟁이의 날>

진주에서만 쓰이는 절기, <나막신쟁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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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1-22
기자 :
김종신
조회 :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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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텍스트필수

진주에서만 쓰이는 절기, <나막신쟁이의 날>

 

 

진주에서만 쓰이는 절기가 있다. <나막신쟁이의 날>이 그렇다. 오는 23일이 나막신쟁이의 날인데 음력 1222일이기 때문이다. 섣달 스무이틀 이날은 한겨울이 다 가고 동지섣달이 다가올 무렵이지만 이날만큼은 추워진다고 한다.

모진 매를 맞다 죽은 나막신쟁이가 죽은 날이면 매년 그렇다고 한다. 나막신쟁이가 죽은 곳은 선학산과 비봉산 사이의 고개인 말티고개이다. 거란의 60만 대군을 강감찬 장군과 함께 물리친 강민첨 장군의 사당이 있는 은열사 근처는 옥봉 삼거리다. 시내에서 말티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이다.

옥봉삼거리에서 천천히 말티고개를 넘으면 비봉산과 선학산을 연결하는 봉황교가 나온다. 찾은 날은 다행히 찬 바람이 불지 않는 겨울을 잊은 봄날 같은 날이었다. 고개에서 잠시 뒤돌아보면 푸른 남강이 감싸듯 흘러가는 진주 시내가 보인다. 덩달아 나막신쟁이의 설화도 밀려온다.

옛날 말티고개 언덕배기에 나막신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는 나막신쟁이가 살았다고 한다. 여름 한 철 장사인 나막신이 겨울에도 제대로 팔릴 리 없었다. 장날이라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나막신쟁이의 눈에는 집에서 기다릴 딸린 식구들의 얼굴이 아련했을 것이다. 장날 물건 팔러 나간 아버지를 배웅했던 식구들 얼굴에 빈손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걸음은 무척이나 힘겨웠겠지. 나막신쟁이는 돌아가는 길에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부자에게 돈 서 냥을 받고 곤장 30대를 대신 맞았다. 평소 제대로 먹지도 못한 나막신쟁이가 건강한 장정도 견디기 어려운 곤장을 서른 대나 맞고 집으로 돌아가다 말티고개 중간에 쓰러지고 말았다.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가장(家長) 아버지를 찾아 나선 식구들. 어두운 밤 중에 찾지 못한 가장은 날이 밝은 다음 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꽁꽁 언 손에는 배고픈 가난한 식구들에게 사 먹일 단돈 서 냥이 꼭 쥐어져 있었다.

나막신쟁이가 죽고 난 뒤 매년 이맘때면 모진 바람과 함께 날씨도 유난히 추웠다. 언제 가부터 진주사람들은 이날을 <나막신쟁이날>이라 부른다.(진주문화연구소에서 펴낸 <진주 옛이야기(안동준 지음, 지식산업사 출판사>)” 라고 한다.

시내에서 도동으로 무시로 넘나들었던 이 고개에 깃든 슬픈 사연이 만든 진주지역만의 절기, 나막신쟁이의 날. 이제는 이 길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이 고개를 넘고 지날 때면 내 주위를 둘러보자 다짐한다.

 

2021. 01. 21. 시민명예기자 김종신(하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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