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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재조명 미디다큐 잇다 시리즈 - 파성 설창수 선생

작성일
2022-07-01 16:16:47
조회수 :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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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재조명 미디다큐 잇다 시리즈 - 파성 설창수 선생>

(자막) 진주예인, 한국문화를 잇다
아무도 모르는 진주 천년의 비밀
진주예술과 한국문화를 잇다

(자막)  [잇ː따] 진주예인, 한국문화를 잇다
(자막)  [잇ː따] 파성 설창수 

(자막) 인간 상록수

“설창수, 반일정신 선동죄로 압송한다”
(자막) “설창수, 반일정신 선동죄로 압송한다”

(자막) 1938년 일본 대학시절 천황 비판으로 옥살이
(자막) 20대 독립유공자

(자막) 1945년 해방
“신문사를 포위하고 인쇄 기계를 부숴라”
(자막) 경남일보 기자시절 이승만 정권 비판으로 신문사 습격과 수난
(자막) 30대 시절 독재아 부패를 고발했던 언론인

(자막) 1960년 4.19 혁명
군부 쿠데타 정권에 부역할 수 없다
(자막) “군부 쿠데타 정권에 부역할 수 없다”
(자막) 1960년 민주당 초대 참의원
(자막) 1961년 5.16 군사정변
(자막)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9개월 만에 사퇴

(자막) 사퇴 후 이틀 뒤 진주로 낙향
(자막) 이후 설창수 선생은 가택 연금된다

(자막) 강희근,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일제에 대한 저항이 익어서 민족에게로 
(자막) 뜨거운 저항정신이 뿜어낸 예술혼
화롯불과 같은, 품어내는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운동을 어느 정도 하고난 뒤에 그 다음에 정치 운동을 합니다. 


(자막) 굴곡의 현대사를 관통한 불운의 시인
40대에 사회적 성취를 이뤘지만
한순간에 모든 걸 빼앗겼던 설창수 선생
그의 분노는 더 격렬해졌고
고통의 시절은 시가 되었습니다


(자막) 강희근,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그 분의 시는 끓는 피이기도 하고
(자막) 설창수 선생의 시는 끓는 피이기도 하고
민족이 존재하는 곳에 시가 있고 민족 공동체가 있고 
(자막) 예술제의 시초 제1회 영남예술제 (개천예술제)
(자막) 민족이 존재하는 곳에 시고 있고 민족 공동체가 있고

그 제일 위에 단군 할아버지가 있고
(자막) ‘문화 예술은 민중과 함께하는 들꽃이어야 한다’ -설창수

그런 계승을 가지고 개천예술제를 만들거든

(자막) 대한민국 예술제 진주에서 발원하다
개천예술제를 창제한 사람들의 뜻이 진주에서 발원하여
그것이 그의 최고의 유산이다

(자막) 대한민국 최초의 예술제를 만든 진주의 큰어른
(자막) 파성 설창수(1916~1998)
불의에 진노하며 뜨거운 예술혼으로 살다간 파성 설창수

그가 쌓아올린 대한민국 예술의 힘은 이곳 진주에서 여전히 굳건하게 서있습니다
(자막) 개천예술탑

이 캠페인은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시와 함께합니다
(자막)  [잇ː따] 진주예인, 한국문화를 잇다
(자막) 참진주 부강한 진주 행복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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