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수해피해를 겪어야만 했던 집현면은 홍수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특히 산(山)과 관련한 전설들이 많은데, 산 이름이 대부분 홍수와 관련해 지어진 것이어서 흥미를 끈다.
집현산의 대표적인 산(山)중의 하나인 장대산도 홍수와 관련해 이름이 붙여 졌는데, 잔대산은 집현면 사무소를 중심으로 볼 때 남쪽으로 높게 솟아 있는 산이다.
잔대산은 옛날 천지개벽이 되어 사방천지가 다 물에 잠기고 작은 산들도 그 모습을 감추었는데, 잔대산 만은 꼭대기까지 다 잠기지 않고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잔대'만큼 남았다 해서 '잔대산'이라 했다고 한다.
집현면 사촌(沙村)마을에는 산 정상에 구시바위가 있다. 마을주민에 의하면 천지개벽 때 마을 전체가 물바다였는데 이 바위만큼은 물에 잠기지 않고 소(牛)의 여물통만큼 남았다 해서 구시바위라고 불렀다 한다.
집현면 사촌리 기동마을 앞 도로 맞은 편에 보면 탕건모양을 한 돌무덤이 있다. 이 돌무덤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의 말무덤이라고 전해온다.
이 말무덤 위에는 서 너 개의 돌이 있는데 그 모양이 꼭 선비들이 갓 안에 쓰던 탕건과 같이 생겨 탕건 말 무덤이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말이 죽었다고 해서 말 무덤을 만든 것도 특이하지만, 말 무덤 위에 있는 돌이 탕건과 비슷해, 선비의 목숨을 구해주었거나, 과거에 급제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줘서 말 무덤을 만들어 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제보자: 윤태호(70) 사촌리 기동마을>
최 부자는 천하에 둘도 없는 지독한 영감이었다.
누구도 그 집에서 동냥을 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구두쇠다.
어느 날 최 부자 집을 찾은 탁발승이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청했다. 그런데 노랭이 최 부자가 그냥 시주해줄 사람이 아닌 터.
쌀은커녕 좁쌀 한 톨 안 주면서 대신에 쇠똥 한 바가지를 퍼주었다. 탁발승은 아무 말도 없이 합장하며 집을 돌아 나오는데,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이 집의 며느리였다. 최 부자의 심보와는 달리 며느리의 심성은 무척 고와서 시아버지 몰래 시주 쌀을 퍼다가 저만치 가는 탁발승에게 건네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탁발승은 합장(合掌)을 하고 며느리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된 듯 비장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지금 바로 저 산 위로 올라가야 삽니다. 절대 집을 쳐다봐서도 안되고 그냥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신경을 써서도 안 됩니다."하고 신신당부를 하며 떠났다.
며느리는 영문도 모른 채 탁발승이 시키는 대로 산으로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는데 마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스님의 말만 없었더라도 뒤돌아 봤을 텐데 신신당부하던 말이 떠올라 묵묵히 올라 산꼭대기 부근에 다다랐다.
그동안 계속해서 자기 집 부근에서 이상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자식 생각이 간절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걱정도 되고 궁금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 이게 무슨 조화인가? 자기 집이 있던 자리는 큰 못이 되어 버렸고, 집은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며느리가 되를 돌아다 보는 순간 큰 돌로 변하고 말았다.
집현면 정수리(亭水里) 검정골 안쪽에 있는 높은 산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용디미(덤)라고 부른다. 옛날에 용(龍)이 승천(昇天)하다가 떨어져서 산의 정상(頂上)부분이 크게 둘로 나누어져 용디미라고 부르는 이곳에 옛날에는 절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용디미 어딘가에 큰 사찰(寺刹)이 있었는데, 이 사찰이 들어선 곳은 그야말로 명당(明堂)자리인지라, 한때 많은 풍수가(風水家)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명당이라는 소문이 나자, 사찰 주변으로 묘(墓)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어느 누군가가 절에 빈대를 많이 잡아넣었다.
이후 이 절에는 빈대가 너무 많아 절이 망하고 응석사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예로부터 집현산(集賢山)에는 호랑이가 많았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중에서도 정수리 철수마을의 호랑이 이야기는 최근까지 마을주민에 의해 증언되고 있다.
집현면 정수리 철수마을에 있는 보림사(寶林寺)에는 집현호랑이에 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보림사라는 절이 생기기 이전에 불사하던 어떤 스님은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꿈에 어떤 노스님이 나타나 '골짜기에 '산신청'을 하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스님은 꿈에 나타난 스님과 함께 골짜기를 향해 산신제를 지내는데,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그중에 암놈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 호랑이는 할머니로 변했다.
할머니로 변한 호랑이는 "네가 지어준 보약을 먹고 이제야 기운을 차렸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보약을 지어 줄 것인가"하고 물었다.
그래서 스님은 "계속해 올리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자 그 할머니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이 스님은 산신각을 모시고 해마다 산신제를 지냈는데, 어느 해 겨울 다시 그 스님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발자국만 남기고 떠난 것이다.
폭설이 내린 지난 1994년 겨울, 보림사 뒤편 응달진 곳에서 호랑이의 발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그 스님은 하도 신기해 철수마을 주민 2명과 함께 그 발자국이 호랑이 발자국인지를 확인했고, 이튿날에는 동물원에 가서 그 발자국의 모습까지 확인했다.
분명히 그것은 호랑이 발자국이었다. 이듬해인 1995년 서울에서 구정을 지내기 위해 내려온 이 마을 고씨 할머니의 아들인 강씨는 토끼를 잡으러 뒷산을 오르다가 다시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이로써 '하룻밤에 천 리를 간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집현호랑이의 존재가 발자국으로나마 확인됐고, 이 마을 사람들은 이 호랑이 이야기를 아직도 진짜로 믿고 있다.
그러나 세상 사는 일이 어려워지고, 마을 사람들도 먹고 사는 일에 힘들어하면서 호랑이의 존재는 점점 잊혀 가게 됐고, 새 천 년에 들어서는 그저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지금도 '집현에 호랑이가 최근까지 있었다'는 전설만 간직하고 있을 따름이다.<제보자: 정수리 이인봉·고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