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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리(元內里)

1914년 진주군 수곡면 하동(下洞), 원당면 내동(內洞), 곤양군 곤명면 본촌동(昆明面本村洞) 각 일부로서 원내리라 하였다.

원내(元內)

원외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원당(元堂)의 지형과 들을 중심해서 내원당(內洞), 원내리(안원당)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원당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라 하고 자연 마을은 원내, 서촌, 원동으로 분류되고 진양강씨(晉陽姜氏), 청주한씨(淸州韓氏)가 살고 있다.

칠성들(七星平野)

원내 홍림정 남쪽에 있는 큰 들이다. 북두칠성 모양의 바위가 7개 있었다고 해서 칠성들로 불렀다고 한다.

원당안락당

노인정이다. 1977년에 창건하였다.

일원당(一元堂)

진주의 서부에 '일'원당 '이'안계 '삼'사월이라는 말이 전한다. 정승(政丞)과 선생이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일'원당이라 하였다 한다.

경로잔치

원당 앞 구룡(九龍)들에서 조선조 선조 13년 5월 13일에 류조계(柳潮溪)선생이 주관하여 진주목사와 곤양 현감을 초대하고 70세 이상의 노인 71명과 기생(기생) 40여명, 그리고 동민 전원이 참가하여 경로잔치가 개최 되었을 때 선물도 많았으며 당일 오식(午食)은 본동에서 부담하고 동민들이 모두 관람하여 가가호호(家家戶戶)마다 점심하는 연기(煙氣)가 나지 않았다고 류홍림정사(柳洪林亭史)에 기록되어 있다.

구룡들(九龍平野)

원내리 일대의 들이다. 마치 용(龍) 아홉 마리가 들을 보호하기 위한 형국이라 해서 구룡들로 불렀다고 한다.

서촌(西村)

원내리 서편에 있다하여 서면이라 하다가 서촌으로 바꿔 부른다. 청주한씨(淸州韓氏), 남평문씨(南平文氏), 창녕조씨(昌寧曺氏)들이 살고 있다.

큰서재골

서촌 북쪽에 큰 서재골과 작은 서재골에 옛날 서재가 있었다 한다.

원동(元東)

고려시대 원당에서 정승(政丞)이 났을 때 이곳은 전국적으로 통신 연락처가 되었다고 하여 고역(古驛)이라 하다가 1964년부터 원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룡동덤(五龍洞)

원동 남쪽에 있는 산 주렁이 용(龍)처럼 생겨 보이는 더미가 다섯이 있다.

한산사(寒山寺)

원동 뒷산골에 소재하고 있다. 1870년경 비로사나불좌상(毘盧舍那佛坐像)을 모시고 불도를 닦을 때부터 고산암 한산암 한산사로 발전되었으며 불좌상의 둘레 11자, 앉은 키 6자이며 1870년 당초 고산암을 안설산이 세웠다 한다.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가들이

원동에서 원내리로 가는 중간 지점에 냇물이 있어 조선조 선조때 가교(假橋)를 설치한 곳을 지금까지도 '가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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