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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 응제시주(權近 應制詩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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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칭 : 권근 응제시주(權近 應制詩註)
  • 주소 : 대곡면 단목길 7번길 24 길찾기 복사
  • 관리기관 : 문화에술과 문화재팀
  • 전화번호 : 055-749-5312
  • 이용료 : 전화문의 바람
  • 문화유산지정 : 보물
  • 이용시간 : 전화문의 바람

소개

응제시는 조선초기의 문신 권근(權近, 1352 ~1409)이 명나라에서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명제(命題)에 따라 지은 시 24수에 그의 손자 권남(權擥, 1416~1465)이

응제시는 조선초기의 문신 권근(權近, 1352 ~1409)이 명나라에서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명제(命題)에 따라 지은 시 24수에 그의 손자 권남(權擥, 1416~1465)이 상세하게 주기(註記)한 한시(漢詩)이다.

이 응제시의 편차(編次)는 앞에 명나라 황제가 ‘제압록강(題鴨綠江)’ ‘고려고경(高麗古京)’ ‘사경요좌(使經遼左)’의 시제로 친히 지은 어제시 3수를 싣고, 중국의 원암선사(圓庵禪師)가 같은 시제로 응제(應製)한 시 3수를 그 뒤에 추가하였으며, 이어 권근이 명제에 따라 3차에 걸쳐 지은 응제시 24수를 수록하였다. 권근의 1차 명제시는 왕경(王京)에서 출사(出使)하여 명나라에 이르는 여정에서 ‘봉조선명지경(奉朝鮮命至京)’ ‘도경서경(道經西京)’ ‘도압록강(渡鴨綠江)’ ‘유요좌(由遼左)’ ‘항내주해(航來州海)’ 등의 시제로 읊은 시 8수이고, 2차의 명제시는 ‘시고개벽동이주(始古開闢東夷主)’ ‘진한(辰韓)’ ‘마한(馬韓)’ ‘변한(弁韓)’ ‘신라(新羅)’ 등 우리나라의 고대국가 역사와 ‘금강산(金剛山)’ ‘신경지리(新京地理)’ ‘탐라(耽羅)’ ‘대동강(大洞江)’ 등의 지리를 시제로 읊은 시 10수이며, 3차의 명제시는 명나라에 머무는 동안 유관(遊觀)과 연회(宴會) 등에서의 환대를 시제로 읊은 시 6수이다.

저자가 정서하여 보관해 온 응제시가 간행(刊行)된 것은 태종 2년(1402)이다. 태종은 우리나라 사람으로 중국에 가서 황제의 명제로 시를 지어 찬사를 받고 어제시까지 하사받은 것이 일찍이 없었던 영광스러운 일이므로 이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에게 명하여 의정부에 내려 판각하게 하였다. 그 서문을 이첨(李詹)이 작성하였으며, 이것이 초간(初刊)에 해당한다. 그 뒤 세종 20년(1438) 3월에는 세종이 그 초간판의 각자(刻字)에 완결이 생겨 강원도 감사 권맹손(權孟孫)에게 명하여 다시 판각하게 했는데, 이것이 중간(重刊)이다.

응제시에 권남이 상세하게 주기하여 간행한 것은 세조 8년(1462) 10월이다. 그 간역(刊役)은 전년(1461) 2월에 착수되어 1년 8개월 걸려 마쳤다. 그 간역에서 본문의 교정은 최항(崔恒), 참교(參校)는 양성지(梁誠之) 이파(李坡)가 맡아 보았고, 서발문과 본문의 판서(板書)와 서고(書藁)는 강희안(姜希顔) 성임(成任) 정난종(鄭蘭宗) 안혜(安惠) 장자순(張自純) 등 당대의 명필가들이 총동원하여 필서하였으며, 연판(鍊板)은 김중련(金仲連), 각자(刻字)는 윤영화(尹英和)가 각각 맡아 필역하였다.

책의 장정(裝訂)은 황표지를 청사(靑絲)로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으로 철하여 개장한 선장(線裝)이며, 겉표지 위에 ‘양촌집(陽村集)’ ‘응제시(應製詩)’와 서뇌부 하단에 ‘단구장(丹邱藏)’을 묵서하였다. 책의 첫 장과 끝 장의 광곽 좌우변의 바깥 하단부에 ‘진양하씨(晋陽河氏)’ ‘습정재 하응운(習靜齋 河應運):1676~1736)’ 광곽 상변의 서미에 ‘진강세가(晋康世家)’ ‘하우식 담계인(河祐植 澹溪印:1875~1943)’ ‘해성장서(海醒藏書)(해성은 하순봉(河恂鳳:1901~1970)의 호)’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으며, 어제시의 첫장 하단부에는 ‘하만박신(河萬樸信)’의 둥근 인장이 찍혀 있어 진양하씨 세가에서 전래되어 온 보장(寶藏)임을 실증해 준다.

이 응제시와 동일한 판종(板種)은 보물(김종규 소장)로 지정된 것 외에도 여러 종이 있는데 책장이 결락되었거나 보사(補寫)되었고 또한 책 전반에 걸쳐 부분적으로 마멸 또는 오손되어 정교하지 못하다. 이 판본은 간행되자 입수하여 간직해 온 것이 전래되어 낙장과 마손이 없고 인쇄가 정교하여 현전하는 것 중에서는 가장 선본으로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응제시는 당시의 조명외교사(朝明外交史), 역사(歷史), 지리(地理) 그리고 한문학(漢文學)의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됨은 물론 또한 당대의 일류 명필가들이 총동원되어 특성있는 서체로 유려하게 필서하여 정각(精刻)한 판본인 점에서 서예사(書藝史)와 서지학(書誌學), 인쇄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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