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명석면(鳴石面) 신기리(新基里)에 자웅(雌雄)을 상징하는 한쌍의 돌이 있다. 이 돌을 운돌 혹은 명석(鳴石)이라고 한다. 숫돌은 자연석 남자 성기모양으로 보이고, 암돌은 여
진주시 명석면(鳴石面) 신기리(新基里)에 자웅(雌雄)을 상징하는 한쌍의 돌이 있다. 이 돌을 운돌 혹은 명석(鳴石)이라고 한다. 숫돌은 자연석 남자 성기모양으로 보이고, 암돌은 여자가 족두리를 쓴 형태이다. 원래 따로 떨어져 있던 것을 1970년 음력 3월 3일에 옮겨 세우고 1973년에 명석각(鳴石閣)을 준공하여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3일에 유교식 제를 올리는데 제를 지내는 목적은 호국충절을 기리고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를 지낼 때에 출향인을 초대하여 각종 민속놀이를 벌인다.
고려 공민왕(高麗 恭愍王)때 여진 및 거란의 침입을 대비하여 <일설에는 고려 고종(高宗) 18년 몽고(蒙古)의 침입을 대비한 것이라고 한다> 진주성을 수축할 때에 부역에 동원되었던 광제암(廣濟庵)의 승려가 이곳을 지나다가 급히 걸어오는 한 쌍의 돌을 만나서, “무령석물(無靈石物)이 어디 가느냐?” 하고 물으니까 돌들이 “진주성 부역에 고생하는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성돌이 되고자 간다.” 답하여서 “이미 성을 다 쌓았다.”고 하자 돌이 크게 울며 전신에 눈물을 흘리고 그 자리에 섰다. 그래서 이 자웅석을 운돌이라 이름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소식을 들은 중국 명사 두사충(杜思沖)은 “크나큰 그 돌/ 낭랑한 그 울음이여 / 그 이름의 크고 장함 / 천만년 빛나리 (磊磊維石 琅琅其鳴 其名宏大 於千萬齡)>”이라는 자웅석 찬(雌雄石 讚)의 시를 지어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