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한씨 고문서’는 산청군 단성면 백곡리에 대대로 살아온 청주한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경상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된 자료다.
호구단자(戶口單子) 60매와 준호구(準戶口) 5
‘청주한씨 고문서’는 산청군 단성면 백곡리에 대대로 살아온 청주한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경상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된 자료다.
호구단자(戶口單子) 60매와 준호구(準戶口) 5매, 입후성문(立後成文) 및 소지(所志) 연점(連粘) 문서 1매, 공명첩(空名帖) 3매, 교지(敎旨) 13매, 전령(傳令) 2매로 구성되어 있다. 대개 시기는 18∼19세기에 걸쳐 있다. 이 중 양자(養子)를 설정하는 당사자의 입후성문(立後成文) 및 여러 사람이 이를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는 소지(所志)가 같이 연결되어 붙어져 있는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이 외에 ‘전령(傳令)’이란 명칭으로 관직에 제수하는 문서도 있는데, 이런 경우도 드물다.
원래 4품 이상은 ‘교지(敎旨)’, 6품 이상은 ‘교첩(敎牒)’, 7품 이하는 ‘차첩(差帖)’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마 군부(軍部)에서는 차첩을 전령의 형태로 내리기도 했던 것 같다. 또 일반 가문에 쉽게 보기 힘든 공명첩이 3장이나 있다.
나머지 교지나 호구단자·준호구는 일반적으로 많은 가문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지만, 건수도 많고 18∼19세기에 걸쳐 분포하므로 조선시대 양자(養子)를 설정하는 과정 및 18~19세기 사회사 연구에 훌륭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