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예로부터 "조정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인재의 반은 진주에 있다."라고 할 정도로 인재가 많았으며 특히 충신이 많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고려조 현종원년 거란군이 고려를 침략하자 남쪽으로 몽진하는 왕을 호위하던 중 자신이 볼모가 되어 거란군을 물러나게 하고 그들의 병영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불사이군을 외치며 죽어간 충절신 시랑공 하공진, 홍화진에서 거란 소배압의 10만 대군을 섬멸하여 나라에 충성을 다한 은열공 강민첨 장군, 단종조 충절신 충장공 정분, 임진왜란때 진주성대첩을 이룩한 김시민 목사와 진주민의 충성, 2차 진주성 싸움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순절한 7만 민·관·군과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충절, 구한말 서부경남의 의병활동을 주도했던 노응규 의병장과 의병들, 3.1운동 당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진주민들의 충절정신에 이르기까지 그 혼은 오늘에 이어져 진주인의 가슴속에는 「충절의 고장」 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