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조선조의 문신이며 자는 백부, 호는 통정이다. 진주강씨 문하찬 성사 강시의 큰 아들로 우왕 2년(1376)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제주, 밀직사제학, 밀직사 부사 첨서사사를 역임하였으며 추충협보공신에 올랐다. 공양왕 1년(1389) 세자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고, 이어서 판밀직사사에 이조판서를 겸하였다. 한양으로 국도를 옮기는 것을 극력으로 상소하여 이 역사를 중지케하였다.
교주도 관찰출척사를 거쳐 정당문학겸 대사헌이 되었으며. 이때 포은 정몽주의 묵시를 받은 간관 김진양이 조준과 정도전 등에 대한 탄핵사건에 적극적으로 동조, 협력하였고 공양왕 4년(1392) 정몽주가 무참히 살해된 뒤 정몽주의 지지자로 지목되어 진주에 유배되었다가 태조 7년(1398) 동북면 도순문사에 발탁되었다.
지금도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터에 젊은 시절 글읽을 때 심었던 매화나무가 있는데 대대로 후손들이 보식하여 오늘까지도 꽃을 피우고 있으며, 시인 묵객들이 글과 시를 지어 그의 사람됨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