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사 하즙의 아들로 충혜왕 말엽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교감이 되었으며 공민왕 11년(1362) 전리총랑으로 있을 때 홍건적이 쳐들어와 서울인 개성을 함락시켰다. 그는 이 싸움에서 서울을 회복시키는데 큰 공을 세워 2등공신이 되었고 그뒤에 경상도 서해도 양광도 교주도 등에서 안무사로 크게 활약하였고 원주 상주의 목사를 역임 했었다.
우왕 초년에 대사헌이 되었고 진산군의 봉작을 받았으며 어머니의 상을 입고 묘소에 여막을 짓고 3년 시묘살이를 예문대로 다하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