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영남지방에 가득찼을 때 고을의 수령들과 군민들이 모두 산속으로 피난갔었는데 초유사, 김성일이 그를 불러 함창현감을 겸임시켰더니 있는 힘을 다하니 그 성의가 너무나 간곡하여 흩어졌던 고을 사람들이 돌아와 모이게되었다. 이듬해 적이 울산으로 물러나 진치고 있는데 명나라의 장수가 상주와 대구 사이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명나라군대를 지성으로 보살피니 감사가 그에게 양료차관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3도의 음식물 보내는 업무를 총지휘케 하였더니 그는 마음을 다해 계획을 세워 이를 처리해 나가니 군량이 끊어지지 않아 사람마다 모두 기뻐하였고 명나라 군사도 역시 그를 경애하였다. 오리 이원익이 체찰사가되어 호남에서 집무하고 있었는데 그를 불러 체찰부의 아문장으로 삼았고 곧 본부 영장으로 승진되었다. 일찍이 정기룡 병마절도사를 쫓아서 성주의 화원현에서 적을 만나 싸워서 크게 이겼고 고령 안림역에서도 적을 크게 무찔렀다. 별장 우배선과의 합동작전으로 삼가에서 적을 쳐서 크게 이긴바 있었다. 그가 목숨을 거두니 일실이 숙연하였고 다만 장검 한 자루와 단금 하나가 있었을 정도로 청렴하게 살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