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동전마을 구뱃골(九拜谷)에는 두 좌(座)의 큰바위가 마주보고 서있다. 예부터 이 한쌍의 바위는 마치 남녀의 성기와 흡사하여 암돌과 숫돌이라고 불러지기도 하고, 자웅석(雌雄石)이라 일컬어 오기도 한다.
때는 고려 공민왕때 원나라로부터 여진 및 거란의 동침정보를 접하고 각 군읍에는 성지 수축의 급명이 내렸을 적의 일이라고 전하나 진양성의 수축 역사는 바다 건너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토성을 석축으로 개축한일이 있다.
그 즈음 진양성은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을 받고 많은 피해를 입었던터라 조정에서도 석축으로 개축하려고 했거니와 우선 진양성민들이 자진하여 견고한 성을 쌓자고 발벗고 나섰다. 석성을 쌓는데 인근 백성들까지 동원되어 석재를 나르는 등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였으며, 산간의 승려들도 가담하여 역사를 마쳤다. 이 때 축성에 참여했던 한 도승이 광제암을 가려고 동전촌을 지나는데, 산위에서 빠른 속도로 굴러오는 두 바위덩이를 만났다. 도승은 괴이하여 "이 무령석물(無靈石物)이 어디로 간다고 이렇게 바삐굴러 가는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두 바위덩이는 어느 구석에선가 나오는 목소리로 "진양성 수축역사 때문에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하니 이땅에 있는 우리도 스스로 출역하여 백성들이 부담을 덜고자 가는 길이외다." 하는 것이 아닌가.
도승은 감복하여"아! 그런가, 진양성 수축역사는 이미 끝났는데..."하고 알려주자 두 자웅석은 듣기가 무섭게 우뚝 서더니만 크게 통곡하고는 주저 앉으며 전신에서 눈물방울을 뚝 뚝 떨어뜨렸다. 도승은 감탄하여 두 바위에 합장 배례하고"거룩한 보국충석(輔國忠石)이여!" 하면서 아홉 번 절을 하니, 그 골짜기가 구배곡(九拜谷)이 되었다 한다.
지금의 동전마을 "구뱃골"과 "명석"이라는 면이름은 모두 이 자웅석에서 유래되었으며 1973년 2월8일 명석 면민들은 바위가 자리하고 있던 동전마을에 명석각(鳴石閣)을 지어 매년 3월 3일이면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