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소싸움은 삼국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전승(戰勝)기념 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 유래가 깊다. 예전에는 진주의 "큰판(소싸움)"은 남강 백사장이었다. 소싸움이 벌어지는 며칠 동안은 싸움소가 일으킨 뿌연 모래 먼지가 백사장을 뒤덮었으며, 수만 군중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고 수백 개의 차일(遮日)이 백사장을 온통 뒤덮었으며 차일 속에 오간 술 바가지로 인하여 양조장 술은 동이 났다 한다. 이러한 진주 소싸움은 일제 때 민족의 억압된 울분을 소싸움에서 발산했고 일본인들이 진주 땅을 들어설 때 수만 군중이 백사장을 뒤엎고 시가지를 누비니 겁에 질려 남강 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며칠씩 머물렀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