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介人庭園

개인정원

  • 정원 품은 10남매 뜰

    정원 품은 10남매 뜰

    이 정원은 특이하게도 숫자 ‘10’이라는 키워드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본가로 활용하고 있으며, 무려 100여 년이 넘은 민가 한옥을 활용한 현재 공간은, 이전 주인도 10남매를 낳았고, 이강주 대표의 부모님 또한 10남매를 낳으신 곳이다. 이토록, 유독 이 정원에는 ‘10’이라는 숫자가 묘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정원 이름을 ‘정원 품은 10남매 뜰’이라 지은 것도 이 때문. 원래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번 개인 정원 신청을 위해 실제로 10남매인 것에 착안하여 지었다고 한다. 때문에, 비록 급하게 지었지만 어머니와 10남매간의 사랑과 우애를 표현한 이름에 만족한다고. 이강주 대표는 지금의 정원을 ‘어머니’라고 대답했다. 집을 기점으로 앞뒤로 정원이 반복되는 정원의 배치 구조가 마치 정원이 집을 품은 듯 보여, 마치 어머니가 10남매를 품고 있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더군다나 무려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께서 아직도 정원과 잔디를 직접 관리를 하신다고 하니, 왜 정원을 어머니로 대입했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정원을 만들게 된 계기 또한 무려 10남매에 이르는 식구가 조금 더 넓게 마주 앉아 이야기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정원 공사를 할 당시만 하더라도 ‘왜 힘들게 공사를 하냐’는 가족들의 만류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원이 완공되고 나니, 가족들끼리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이에 보람을 느껴 하나씩 꾸며가기 시작한 게 지금의 정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대표는 애초에 체육학과가 전공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글쓰기, 꽃심기 등 감성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고, 아버지께 물려받은 손재주 덕에 정원을 디자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방문객분들이 정원에서 인공적이고 정형화된 느낌보다 자연에서 느껴지는 평온함, 편안함이 더 느껴진다고 말해주면 그간 정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정원의 시작이 된 원두막은 이 정원의 시작점이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비록 허술하게 지어졌을지언정 이 대표가 제일 애착이 가는 구조물이기도 하다고. “몸은 힘들지만 정원을 꾸미면 잡생각도 없어지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여러 모로 힐링이 많이 되고 있어요” 몸의 힘듦보다 보람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이강주 대표. 그의 정원관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아직까지 머릿속에 아이디어도 많이 남아 있어, 직장생활에서 은퇴하면 그 아이디어들을 실행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열정 때문이었을까. 우연히 3~4년 전에 KBS 프로그램 중 하나인 ‘생방송 아침이 좋다.’ 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당시 전원생활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가입한 한 인터넷 카페가 주최한 전국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가며 공동리더로써 활동을 했는데, 그게 우연히 방송작가 귀에 닿게 되어 방송까지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 번씩 나처럼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정원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어요, 하지만 다른 분들께 나무를 사 오거나 기부를 받아올 때면 ‘이렇게 저처럼 개인 정원을 사랑하고 좋아해 주시는 분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럴 때마다 그 자체로 만족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가 조성한 공간을 또 다른 누군가도 와서 즐기면서 구경도 하고 힐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누구든지 놀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이강주 대표.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족들이 주말에 본가로 내려올 때마다 어머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제일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한다. 희생이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결국, 누군가는 그 짐을 짊어지고 그걸 책임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강주 대표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나의 희생을 지켜봐 주는 이들이 보이지 않고 오르막길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언젠가 내가 이 짐을 내려놓았을 때 굽이굽이 뒤로 펼쳐진 수 없이 오른 흔적들을 언젠가 누가 인정해주는 날이 오는 때를 말이다.

  • 이화의 정원

    이화의 정원

    사실 정원 이름‘이화’ 에는 큰 뜻이 없다. 그저 이전에 운영하던 사업체 이름‘이화’에서 그대로 가져 왔을 뿐이었다. 우리가 만난 정원의 대표인 이순일 대표는 첫 질문이었던 정원 이름의 뜻에 대해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이 정원도 그랬다. 이름에 별 뜻이 없었던 것처럼, 초창기에 조성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큰 뜻이 없이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던 시절, 이름에 뜻이 없었던 ‘이화’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두 이’(二) 자에 ‘화할 화’(和), 당시 두 사람이 동업해서 만들어진 사업체였던걸 착안해 의미를 부여했다. ‘이화’라는 단어에 의미가 부여되었듯, 아무런 뜻과 의미가 없던 정원도 ‘모두를 위한 정원’이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대표는 정원 조성을 시작할 당시에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연히 분양받은 소나무를 어디에 심을지 밤새도록 고민을 한 끝에 결정한 위치에 심었지만, 허허벌판인 땅에 소나무 하나뿐이라니 너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윽고 우연히 분양받은 소나무 한 그루에 꽃이 더해지고, 돌이 얹어지고...그렇게 하나씩 가꾸기 시작한 것이 바로 지금에 이르러 넓은 정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쁘게 가꾼 정원을 혼자 보는 게 아까웠던 이 대표는 작년 9월 정식으로 정원을 공개 오픈했고, 처음에는 돌에 관심 있는 분들만 소수로 오시니 편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커피 마실 수 있는 장소도 제공해드렸던 것을 시작으로 점점 규모가 커지게 되어 지금의 공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 사실, 오픈 당시에는 꽤나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한다. 오픈 초창기에 몰려오는 방문객들로 인해 경관이 훼손되니 마음이 상하기도 했으나, 이런 것도 정원 운영의 일부겠거니 생각하여 마음을 놓으니 오히려 더 차분해졌고 방문객들이 건네는 말들 또한 큰 힘이 되었다. “정원이 정말 예뻐요”, “경상남도에서 이런 정원은 처음 봤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한마디들이 삶의 비타민이 될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자연’을 정원의 강조 포인트로 꼽았다. 정원을 가꾸던 어느 날 가지가 일자로 곧게 뻗은 소나무를 심었는데, 남편이 “저런 소나무는 어찌 보면 사람들의 미관에 맞춰 변형된 소나무인데, 오히려 가지가 구부러진 소나무가 더 낫지 않냐” 고 말했다고 한다. 그 한마디에 사람의 욕심으로 완성된 인위적인 아름다움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 한데 모여 주는 아름다움이 우리의 눈을 더 즐겁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덧붙였다. ‘인내심’을 이 정원이 가진 또 하나의 포인트로 꼽았다. 몇십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꾸준히 가꿔온 정원인 만큼 멀리 보고 차근차근 완성해나갈 줄 아는 인내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훗날 나 스스로 만족을 주는 성과가 이뤄지게 된 거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와의 만남에서 우리는 단순히 정원에 대한 스토리가 아닌, 그 속에 담겨 있는 뜻깊은 의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될 수 없다’ 라는 말을 빌려 인내심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의 귀중함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정원이었다.

  • 이:늘

    이:늘

    원을 지나가는 두 개의 직선, 그리고 짧은 직선 둘. 이늘 갤러리의 로고를 처음 접한 그 때부터 줄곧 이 로고의 의미가 무척 궁금했기에 나의 첫 질문은 당연하게도 이에 대한 것이었고, 이늘 갤러리의 정춘용 대표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래된 소중한 것들을 가꾸고 이어나간다는 ‘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늘 이어준다는 의미의 ‘늘’을 합쳐 지금의 ‘이늘’이란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로고도 이늘의 한글 이니셜인 ‘ㅇ’과 ‘ㄴ’을 이용한 디자인인데요, 기와를 형상으로 이 정원의 특징을 나타냄과 동시에 시계바늘을 형상화해서 세월의 흐름이란 개념을 함께 표현했습니다.” 머리가 멍해지는 답변이었다. 이름부터 정원의 특징, 의미까지 한 번에 하나의 로고에 압축해낸 정춘용 대표의 창의성이 새삼 대단히 느껴지면서 이늘 갤러리의 정원마저 한층 깊이있게 보였다.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인 정춘용 대표의 아내 김현정 대표는, 당시 갤러리와 카페를 운영하기 위한 자리를 찾던 중 이 가옥을 발견했다고 한다. 본래 문산에 있던 50년 된 가옥을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 1972년. 그 후로 다시 50년이 지났으니 도합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집인 셈이다. 이 가옥의 유구함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방문객들이 꾸준히 찾아오신다는데, 먼 타지에서 오신 분이 ‘아름답고 멋진 집이다’라 말해주시는 것인 정원을 꾸민 보람을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 중 하나라고. “정원 이름처럼, 앞으로도 현재와 미래를 이어갈 수 있게 계속 노력하는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정원 관리에 있어 앞으로의 목표가 있냐는 질문에 두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결. 그 연결을 유지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우리 현 세대의 몫일 것이다. 과거 없는 현재, 현재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듯, 지금의 정원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이 기와집의 기둥 역시 현재에 뿌리를 박고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는 또 하나의 표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가옥이 가장 큰 트레이드마크긴 하지만, 그래도 정원인 만큼 제일 중요하게 신경쓴 부분은 바로 바닥에 깔린 이 잔디입니다. 보기엔 평범하고 미숙한 만듦새의 잔디로 보일 수 있지만, 저희는 모양새보단 아이들이 뛰어놀기 안전한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잔디를 키우는 과정에서 제초제 같은 약을 전혀 안 쳤죠.” 그저 무심히 스쳐지나갈 발 밑의 잔디 하나에도 안전과 건강을 생각하는 모습에서, 방문객을 향한 두 대표의 진심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디테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두 대표는 정원 조성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정원에 ‘과거와 현재를 잇다’란 컨셉을 부여했고, 컨셉에 걸맞는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이 가옥의 원래 주인에게까지 연락을 취해 가옥의 역사와 관리 방법을 청해 들었다고 한다.

  • 예술촌 정원

    예술촌 정원

    “이것 보세요, 이 자연석들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이건 오리 같이 생겼고, 이거는 거북이 같이 생겼고. 자연석 이란게 이런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정원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에 ‘예술촌 정원’의 김상수 대표는 그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고는, 그간 사진으로 찍어 둔 자연석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자연석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예술촌 정원’은 진주시에 예술촌이 형성된 후 처음으로 입주한, 김상수 대표의 손으로 직접 탄생한 1호 예술촌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이 있는 거리 이름인 예술촌에서 따서 ‘예술촌 정원’이라고 이름지은 것도 바로 그 때문라고 할 수 있다. “자연석이란 게 남들 눈에는 그저 단순한 돌덩이로 보일지라도 생각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직접 자연석을 구하기 위해 밭을 구매해서 찾아다닐 뿐만 아니라 관리까지 직접 한다고 한다. 심지어 돌에 낀 이끼 하나조차도 직접 관리를 한다고 하니,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퀄리티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 차(茶)에도 관심이 많아 정원 안에 다도실도 갖췄다. ‘양갈래 모양 소나무 풍경을 벗삼아 차를 마시는 곳’ 이란 뜻의 ‘이우당’이라 이름지은 다도실 내부에서 정원을 바라보니 이름대로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는데, 무려 400년 수령이란다. 자연에서 그대로 얻어온 것들로 정원을 꾸몄다는 김상수 대표는 이것저것 욕심을 내서 채우기보단 자연 그대로의 것들을 활용해 심플하게 꾸미는 것을 추천한다. 현재는 동서양 양식이 섞여 있는 퓨전 정원이지만, 앞으로 점차 한국 고유의 정원을 복원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한다.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나라 전통 정원에 다른 분들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앞으로 우리나라 전통 정원 문화가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인터뷰 진행 중 건네받은 따뜻한 생강차의 온기와 함께 정원을 바라보며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빌었다.

  • 아침노을정원

    아침노을정원

    진주시 수곡면 어느 산 아래. 그 곳엔 아침 해가 뜰 때부터 노을이 질 때까지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 곳, ‘아침노을정원’이 있었다. “정원이 산 아래에 있어 다른 집에 비해선 해가 늦게 뜨는 편인데요, 반대편 마을에서 보기엔 옅은 주황색 노을이 산 아래 살짝 내려앉은 것처럼 보입니다. 저녁에는 서쪽 하늘 아래 옥산의 붉은 노을이 짙게 깔려 때때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요.” 정원 이름의 뜻을 질문한 내게 성재연 대표는 이렇게 운을 떼었다. “원래는 평범하게 노을정원이란 이름으로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주시 정원 관계자 분께서 정원 이름을 물으시던 순간, 문득 그냥 노을정원은 너무 흔하고 평범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노을과 상반된 이미지의 단어인 ‘아침’을 넣어 ‘아침노을 정원’ 으로 결정되었죠.” 전세살이에도 퇴근길에 종종 꽃나무나 화분을 사 들고 오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 대표도 어릴 적부터 꽃과 나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좋아하는 꽃이 있으면 긴 시간 버스를 타고서라도 사다 올 정도로 꽃과 나무에 대한 사랑은 깊고 짙다. 정원의 시작은 동생의 요양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 동생의 요양을 위해 고향의 집을 허물고 황토로 새로이 지으면서 정원을 함께 가꾸기 시작했다고. 그러나 정원 토질이 진흙이라 너무 단단했고, 일일이 곡괭이로 일궈가며 부드러운 흙을 가져와 심어야 하다보니 다른 정원에 비해 10배 이상 힘든 일이었단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 오히려 보람과 행복을 더 크게 느꼈다고. 산 아래 정원인 만큼 정원을 가꾸는 데 있어 자연스러움을 가장 크게 추구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꽃을 사시사철 내내 볼 수 있도록 계절별로 피는 꽃들을 다양하게 심었는데, 특히 지금과 같이 너무 추운 겨울에는 제대로 피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동백 대신 심은 12월과 4월 사이에 꽃을 보여주는 크리스마스 로즈는 이 계절의 대표적 꽃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꽃들도 살아가는 방식이 각자 다르잖아요. 사람도 이처럼 삶의 방식이 저마다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되새기게 됩니다.” 관심, 배려, 사랑, 행복과 같이 이 정원도 소중한 가치로써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꾸고 있다는 성재연 대표. 이 정원을 공개한 것도 많은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서라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정원을 아름답게 관리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정원사가 되는 것이 제2의 인생 목표라는 성재연 대표. 힘들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노력하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정원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이루려 하기보단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 시시한 뜨락

    시시한 뜨락

    “여기 정원이 만들어진 게 이제 거의 50년이 넘어가죠.” 정원을 간단히 소개해달라는 부탁에 문정임 대표는 이렇게 이야기 문을 열었다. 진양호 댐 준공 직후 모래사장이 전부였던 땅에 문 대표의 시부모님께서 터를 잡은 것이 이 정원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아파트에 살던 문 대표는 세월이 흘러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나니 근원 모를 허무감이 많이 들었고, 현대 문명에 지쳤다고 느껴 이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고. “제가 식물을 얼마나 좋아하냐면, 초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자취를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방에 놓은 것이 화분이었을 정도였죠. 나이를 생각하면 꽤나 특이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무렵 시부모님으로부터 이 집을 물려받은 당시에는 정원 관리를 남편이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러다 3년 전 코로나-19로 인해 뜻하지 않게 여가시간이 많아지자, 비로소 본격적으로 정원 관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평소 눈에 보이지 않던 나무와 식물들의 배치, 정원 구조와 인테리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다른 장소로 심었을 텐데...’ ‘이 식물은 좀 더 양지바른 곳에 심었어야 했는데...’ 생각이 많아질수록 세심하게 손이 갔고, 지금은 식물 관련 서적을 구해서 공부까지 하고 있다고. ‘시시한 뜨락’이란 이름은 따분하다는 뜻의 ‘시시한’ 이 아닌, 한자 시 시(詩)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했다. 정원을 오픈하던 당시, 돈을 벌려는 욕심 없이 그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정원에서 독서 모임 활동을 하던 것이 정원의 이름의 유래 중 하나란다. “처음에는 우리 아들딸 이름의 돌림자가 ‘함’이기도 하고, 또 우리나라 궁궐 정원 중에 ‘함춘원’이라는 곳이 있기도 해서 거기서 정원 이름을 딸까 했는데 주변에서는 너무 고리타분한 이름이라더라구요. 결국 제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중 김사인 시인의 채널인 ‘시시한 다방’에서 이름을 따 왔죠.” 급하게 지은 이름이라며 멋쩍게 웃는 문정임 대표. 하지만 그 이름에 담은 문화생활에 대한 열망만은 어느 정원 못지 않은 깊이를 담고 있었다. 문 대표는 앞으로 이런 개인 정원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요즘 같이 점점 자연의 냄새와 자취가 사라져가고 자연의 초록이 도시의 회색빛에 가려지는 때에, 이번 사례를 통해 앞으로 사람들이 더욱 개인 정원을 많이 접하면서 자연을 조금 더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이렇게 정원을 가꾸면서 여생을 살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말로 짧은 인터뷰를 마무리지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나는 나에게, 문정임 대표는 방문록 하나 적고 가기를 청했다. 나는 정원과 문정임 대표의 생각에 대한 감상을 담아 이렇게 적었다. ‘울긋불긋한 가을이 단풍잎처럼 저물어 가는 시기에, ’시시한 뜨락’을 방문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새하얀 눈꽃 잎이 내려 나뭇가지에 알알이 맺혀 피어나는 때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십시오.’

  • 성지원

    성지원

    웬만한 진주 토박이에게도 ‘성지원’이라는 이름은 식당 이름으로 더 친숙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에는 다른 하나의 공간의 의미가 더 숨어 있었다. 故최규진 진주상의회장의 조성으로 시작하여 어느덧 12년을 지나고 있는 ‘성지원’은, 지금의 푸른빛이 도는 봄과 여름의 느낌을 맛볼 수 있는 일반 정원과는 달리 가을의 절정에 맛볼 수 있는 감 농장으로 시작했단다. ‘성지원’이라는 이름도 감 농사를 짓던 이전 땅 주인의 자제분 이름에서 따와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넓은 정원을 관리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노동력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정원에 대한 애정과 인내심이 없으면 긴 시간을 두어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조경이 결코 나오지 않죠.” 그러한 생각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성지원’은 올해의 정원 수목 자원 도록에도 당당히 등록되었다. 농원팀장은 “다양한 식물들뿐만 아니라 효자상과 같은 석재 조형물들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은 듯하다”고 답했다. ‘성지원’의 수석 조형들은 식물들 못지 않게 방문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다. 십이지상을 형상화했다는 수석 조형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그 크기에서 오는 웅장함을 포인트로 살려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곳보다 이렇게 사람 크기만 한 십이지상이 있을까요? 물론 제가 가꾼 정원도 사랑하지만 여기 있는 십이지상도 정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듯 모든 요소에 가치를 부여하고 깊은 애정을 쏟고 있는 농원팀장은 시민분들께서 식당도 좋지만 정원에서 즐겁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고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정원도 방문하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 이름에 담긴 의미와 애정, 역사, 그리고 대를 이어 전해오는 노력을 위해, ‘성지원’은 마땅히 정원 이름으로 더욱 알려져야 할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 새뜻정원

    새뜻정원

    ‘정원 관리는 꾸준함이다’ 올해로 벌써 12년을 맞이하는 새뜻정원의 문은숙 대표의 정원 관리 제 1 원칙이다. 터를 잡기 전까지만 해도 논과 밭 뿐이었던,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던 부지를 여러 사람들과 모여 만든 조합을 통해 구매한 후 현재의 마을에 세 번째로 집을 지어 입주하게 된 것이 새뜻 정원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설계부터 최종 마무리까지, 당시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을 손수 지켜보고 관리한 문은숙 대표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사실 마당이 아닌 주방이었다. 기성세대의 주부에게 주방이란 안주인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란 인식이 있었기에, 주부의 개성에 맞게 편리한 주방이 곧 성공적인 집 짓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있는 넓은 공터를 좀 꾸며보면 어떻겠느냐’는 남편은, 몇 년간 화초, 묘목, 바위 등을 어딘에선가 가져와 놓거나 심었고, 휑하던 마당이 점점 꽃과 나무들로 채워지며 정원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며 문은숙 대표는 비로소 ‘내가 정원을 직접 꾸미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가져온 꽃과 묘목들 대부분이 종자 나눔 온라인 카페에서의 나눔이나 공동구매란 것을 안 문은숙 대표는, 이후 남편 대신 카페 활동을 하면서 꽃의 정보를 공유하고 지식을 넓히며 나눔을 주고받았고, 잔디를 심었던 공간이 점점 멋진 화단으로 바뀌어가면서 본격적인 정원 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방 사랑이 전부였던 주부 문은숙 대표는, 자신이 어느 새 남편보다도 정원 관리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면서 자신도 이렇게 정원을 사랑하는 ‘가드너’가 될 줄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문은숙 대표는 꽃을 가꾸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25년 지기 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두 부부 모두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정원의 풀을 뽑고 꽃을 가꾸는 동안에는 잡념이 사라져서 그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고, 계절이 돌아오면 시든 꽃이 다시 피어나듯 마음의 아픔도 점차 치유 되어 일상을 되찾았다고. 정원의 이름이 ‘새뜻’인 것도 이것이 유래란다. 언제나 새롭고 산뜻한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는 성실하며 꾸준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을 담았다는 것이 문은숙 대표의 설명. 처음엔 함께 차를 마시는 친구들과 공유하던 이 정원의 아름다움을 일반인과도 함께 누리고 싶어 정원을 오픈했다는 문은숙 대표. 앞으로도 새뜻정원이 문 대표의 성실함이 바래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방문자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길 기원해 본다.

  • 빈 배엔 달빛만 싣고

    빈 배엔 달빛만 싣고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학창시절에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월산대군의 시조 중 하나인〈추강에 밤이 드니〉이다. 최정걸 대표는 정원의 이름을 이 시조에서 따서 “빈 배엔 달빛만 싣고”라 지었다고 한다. “하우스 주변에 물길을 내서 배가 떠 있는 듯한 형상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이 정원의 이름의 유래 중 하나입니다.” 약 300개에 이르는 분재가 배치된 작지 않은 정원이지만, 70대를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정원을 가꾸는 데에는 결코 20대에 뒤지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는 최정걸 대표는 “무엇 하나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없다. 손길 하나 하나가 정원에 쌓이고 그만큼의 세월과 정성이 담겨야 오래 가는 정원이 만들어진다” 며 꾸준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정걸 대표의 20년 세월이 녹아 있는 이 정원은 그야말로 그의 인생 자체를 상징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인 셈. “제가 건강 때문에 요양차 산기슭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건강도 되찾았고, 정원에서 손주들이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자부심도 느끼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최정걸 대표가 고령임에도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천이 아닌가 한다. 나이가 가져오는 한계를 아쉬워하면서도, 나무 한 그루도 자기 스스로 관리함을 고집하는 그의 자세 속에서, ‘빨리 가는 것’보다 ‘잘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나이 때문에 정원 관리가 점점 힘들어지지만, 절대 업체에는 맡기지 않습니다. 그런 정원은 개성이 없거든요.” 최정걸 대표가 정원에 대해 강조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바로 ‘개성’이다. 빠르게 트렌드가 변화하다보니 뭐든지 반짝 떠올랐다가 홀연히 사려져버리는 현대 사회가 유행을 쫓기 바빠 잊어가는 것. 스스로 오랜 기간 쌓아올린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최정걸 대표는 정원을 통해 묵묵히 이룩하고 있었다.

  • 백광의 뜰

    백광의 뜰

    정원을 가꾸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김정숙 대표의 답변은, 여태까지 들어 온 답변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축이다.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 내에서도 등장한 바 있는,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장 끌로드 모네’의 작품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정원’을 본 것이 정원을 가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계기에 걸맞게, 김정숙 대표의 정원 ‘백광의 뜰’은 화가 ‘끌로드 모네’가 직접 가꾼 정원을 모티브로 하여 조성했다고 한다. 미술에는 조예가 깊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그림에는 소질이 없다며 헛헛한 웃음을 짓던 김 대표는, 그래도 작품 속의 꽃들처럼 장미를 키워낼 순 있을 거란 생각으로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고. 때문에 김정숙 대표는 장미를 정원의 가장 중심적인 포인트로 꼽았다. 사랑, 아름다움, 낭만, 용기, 존경, 열망, 열정 등 다양한 의미의 꽃말을 내포한 장미와 같이, 김정숙 대표는 사랑과 아름다움이 넘치는 장미 정원을 만드는 것 ,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장미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마음이 힘들 때 에너지를 얻는 등 몸과 마음이 건강한 인생을 갖는 것이 목표라고. 명화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보통 내 나이 때엔 다들 골프채 메고 다니는데, 저는 삽자루를 메고 다닌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종일관 웃는 표정인 김 대표는 앞으로 조경을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모습이지만, 조금 더 깊이 있는 조경 지식을 익혀 더욱 다양한 꽃들을 심어보고 싶고, 유리온실도 만들어 월동이 불가능한 꽃들을 키워보고 싶단다. 마지막으로 꽃이 가진 매력을 묻자, 김정숙 대표는 나태주 시인의 작품 ‘풀꽃 1’을 인용하여 답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풀꽃처럼, 오늘이건 내일이건 언제 보아도 예쁘고 싫증나지 않고, 매일 색다른 모습들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진 후에도 다음 해를 기대하게 만드는 설렘. 그것이 꽃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낙화 속에서도 다음 해에 다시 피어오를 것을 약속할 수 있는, 다음 번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성질을 꽃의 매력이라고 말하는 김정숙 대표. 그 모습에서 김정숙 대표의 정원 ‘백광의 뜰’은 그저 예쁘게 가꾼 모습을 감상하기 위함뿐만이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보다 기대감을 갖기 위한 위로의 공간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메종 B

    메종 B

    “발견은 준비된 사람이 맞닥뜨린 우연이다” 이번에 찾은 정원 메종 B는 헝가리의 생화학자 알베르트 센트 디외르디의 이 말이 떠오르게 하는 곳이었다. 카페를 겸하고 있는 현재와 달리, 메종 B는 당초 거주를 위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이영롱 대표의 어머니가 고집하신 지금의 자리로 집터를 정한 것이었는데 이 곳에 자리잡고 있던 소나무의 모습에 정원을 꾸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꽃을 심고 인테리어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메종 B’를 탄생시켰다고. 정원의 이름에도 어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집’을 뜻하는 프랑스어 메종(Maison)과 어머니 성함의 이니셜인 ‘B’를 합쳐 지은 것. 이 터를 만나게 된 것, 그리고 지금의 카페를 운영하게 된 것 모두 어머니를 통해 이루어진 만큼 어머니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아 지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카페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도 이영롱 대표가 직접 발벗고 나서서 기획했다고 하니, 정원과 건물에 이 대표가 가진 애정과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듯하다. 정원을 소개하면서, 이영롱 대표는 화단이 가장 정성을 쏟는 부분이라고 했다. 꽃을 워낙 사랑해서 관리가 힘들더라도 수입 꽃을 심어보고 싶지만 지역·지리적 특성상 화원에 수급되는 꽃의 모종들이 많지 않아서 아쉽단다. 하지만 라벤더와 계란꽃이 마치 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처럼 화단을 아름답게 수놓는다면서 어서 빨리 봄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정원을 찾는 방문객분들께서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이 대표는 정원 모든 구조를 방문객이 편하게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두고 디자인했다고 한다. 화이트 계열로 전체적인 컬러 톤을 맞추고, 거주 목적이었던 건물의 기존 특성을 그대로 살린 리모델링으로 편안함을 유도했다. 때문에 “머물기 편안하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다”란 말을 들을 때마다 그간의 노력이 빛을 보는 듯해서 힘이 된다고.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고 한다. 카페 영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만큼 예쁘게 꾸며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디자인 요소를 가미했지만, 한편으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위적인 부분을 최소화하고 싶었다고. 앞으로의 목표도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한 정원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은 분들이 편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어울리는 정원으로 가꾸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이영롱 대표. 자신이 긴 세월에 걸쳐 일군 정원을 모두에게 공유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임에도 기꺼이 화합의 장을 만들고 싶은 이 대표의 말은 요즘처럼 단절과 의심, 분노가 만연한 시대에 더욱 더 소중한 가치를 빛내지 않나 한다.

  • 멍하니 숲

    멍하니 숲

    여러분은 ‘멍하니 있다’, ‘멍 때린다’는 말에서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현재에도 그다지 긍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지는 않은 이 ‘멍’은, 아이러니하게도 ‘불멍·물멍·빛멍’과 같은 용어가 생길 만큼 바쁜 일상과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을 위한 휴식을 상징하는 단어로 손꼽히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하루 15분 정도의 ‘멍’은 뇌 휴식과 더불어 기억력·학습력·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영 허황된 유행은 아닌 셈. “정원의 콘셉트를 잡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풍경화를 그릴 것인가, 꽃을 그릴 것인가에 따라서 유화가 될 지 수채화가 될 지 정해지니까요.” 황용우 대표의 ‘멍하니숲’은 본래 명상을 콘셉트로 잡은 정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명상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과 진입장벽을 해소하고자 조금 더 일상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 위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것이라고. 우연히 본 두충나무 숲에서 영감을 얻어 많은 사람들이 힐링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카페 정원을 조성하게 되었다는 황용우 대표의 말처럼, 타 정원에 비해 나무의 매력에 집중한다는 점이 ‘멍하니숲 ’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정원이 곧 한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하여, 각 나라의 정원을 구경하려고 스페인, 영국, 호주까지 다녀올 정도로 정원에 관심이 많은 황용욱 대표는, 앞으로 한국 특유의 선의 미를 살린 정원을 조성하여 많은 이들에게 한국의 미를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곡식이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옛말처럼, 정원도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정원 관리도 그만큼 부지런해야죠.” 더불어 정원을 가꾸는 데에 있어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야기를 이었다. 잠시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정원은 티가 금방 나기 때문에 그만큼 정원을 꾸준한 애정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2,000평에 이르는 넓은 정원을 단신으로 지금까지 관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두충나무는 잎과 뿌리부터 껍질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나무라고 한다. 그야말로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 할 수 있는 두충나무처럼, 정원 계획부터 이웃과의 힐링을 생각한 황용욱 대표의 열린 마음이 ‘멍’ 보다 더 가치 있는 힐링이 아닐까 한다.

  • 고철 테마파크

    고철 테마파크

    ‘고철 테마파크’ 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아마 누구라도 폐품이 가득한 삭막한 풍경을 떠올릴 것이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원 입구를 들어가자 보인 것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고철로 만들어진 조형물과 그 사이사이를 누비고 있는 꽃과 식물들의 기묘한 공존이었다. 정대균 대표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한 정원의 일부’라고 정원 소개의 서문을 열었다. 젊은 시절 객지 생활을 하던 정대균 대표였지만, 세월이 흘러 성장한 두 딸이 직장 생활을 위해 김해와 서울로 각자 출가를 한 이후 부모님이 사시는 지금의 땅으로 귀촌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부모님이 평소에 좋아하시던 꽃을 하나 둘 심은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원 관리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심은 꽃과 나무들의 생명이 다하는 것을 보며, 좀 더 지속성 있는 요소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어릴 때부터 그림과 조각에 관심이 많았던 정대균 대표는 그 동안 배운 용접 기술로 하나 둘 고철을 이용한 정크 아트를 시작했다. 어느덧 늘어난 정크아트들이 쌓이며 정대균 대표의 정원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새우, 문어, 새 등 다양한 형태의 정크 아트들이 쌓인 이 곳을 ‘고철 테마파크’라고 이름짓게 되었고, 이후 지인의 제보를 통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더욱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 지금은 유명세가 이어지자 점점 폭넓은 방문객이 찾아오게 되었고, 그 중에는 정크 아트의 작품 활동에 대해 배워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정크아트들 사이사이로 모습을 내밀고 있던 각종 야생화를 비롯한 식물들도 그에 못지 않은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정크 아트와 식물 간에 묘한 조화가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쓸모를 잃으면서 죽었다고 생각한 고철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과 식물이 계절이 지나며 시들고 또 새롭게 피어오르는 데서 순환이라는 공통점이 느껴지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정대균 대표는 자신의 정원보다 마을에 대한 사랑을 더욱 중요시한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 또한, 처음에는 정 대표 혼자서 그리던 것을 건강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완성하게 된 것이란다. “원래 천주교에서 유명한 성지라서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종종 있는데, 방문한 김에 하나라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벽화를 그리던 당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정대균 대표는 현 세대의 어른인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본보기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어릴 때 대나무로 이것저것 만들던 것이 현재 고철로 조형물을 만드는 자신이 되었듯, 어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이끄냐로 다음 세대의 인생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으니 항상 신중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정대균 대표의 말처럼 그의 정원 ‘고철 테마파크’ 가 오래도록 마을과 다음 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떠나는 중 문득 뒤돌아본 정원은, 처음 볼 때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보였다.

  • Sim`s Gallery

    Sim`s Gallery

    어느 정도의 넓이까지를 정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무려 2,000평에 달하는 넓이를 가진 심정숙 대표의 정원, ‘Sim`s Gallery & Horseriding’를 보았을 때, 정원이라기보단 초원이나 들판이란 단어가 더 적절해 보였다. 하지만 심 대표는 그리고 명확하게 이 공간이 정원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주변의 산과 어우러지는 빛이 담기는 공간을 지으며, 수령 50년 이상의 정원수와 친정 오빠들이 평생에 걸쳐 모은 수석들로 정원을 조성했어요. 정원부터 마당까지의 모든 돌에 각자의 문양과 세월이 새겨져 있어서 ‘수석 정원’이라고 불러요.” 과연 보이는 모든 돌 하나 하나에 자연이 그린 그림이 한 폭씩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정원의 수석들은 전시회에도 출품된 적도 있는 작품들인데, 심 대표는 이 천혜의 작품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정원을 공개했다고 한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정원은 갤러리와 마장이 함께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져 현재는 전시회도 개최할 정도가 된 그림은 심 대표의 가장 대표적인 취미이며, 이 집을 지을 당시부터 내부에 갤러리를 위한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심 대표와 승마의 인연은 의료봉사를 위해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승마 트래킹을 통해 그 매력을 알게 되었고, 당시 웰빙 트렌드에 맞춰 건강한 삶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말을 공부하기 시작한 게 지금의 마장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직장 다닐 때부터 두 마리를 아침저녁으로 관리했죠. 말은 사람으로 치면 5살 정도 되는 지능이라 오랜 시간을 두고 교육을 해야 해요. 승마가 전신운동이고 재활도 되는 운동이다보니, 운동을 하면서 인마일체 즉 말과의 교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점이 승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 넓이 때문에 잔디 가꾸기에 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편하게 뛰어놀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는 심 대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드는 모습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저절로 마당에 나가고 싶어진다고 한다. 누구나 와서 보고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 심 대표는 대문도 벽도 세우지 않았고, 넓은 차고와 마장까지 포장된 길까지 갖추어 놓았다고 한다. 정원이 널리 알려져서 지역사회 주민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쉼터로써, 정원 한편에 심어둔 개량 난초꽃과 함께 스몰웨딩 등 소중한 순간을 보낼 수 있는 뜻깊은 공간으로써 정원의 다양한 가치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누구든지 오면 보고 가고 놀다 가면 되죠. 새로운 사람과 서로 인사도 한번 하게 되고 그게 또 사람 사는 방식 아닐까요? 내가 가진 걸 타인과 함께 공유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그것이 인생의 아름다움이자 행복 아니겠어요. (웃음)” 자연 그대로의 시간을 담아낸 정원 속에서, 심정숙 대표는 스스로가 생각한 시간과 공간의 진정한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하고 있었다.

  • Cafe AAM

    Cafe AAM

    ‘Cafe AAM’은 언뜻 보면 집을 개조한 카페로 보인다. 굳이 말하자면 집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곳은 강태선 대표가 예전에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라고 한다. “어린이집 운영할 때부터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엄마의 마음이 곧 대지이고 그 자체가 생명력이니까요” 그래서일까. 강 대표의 진심이 전해진 듯 이른 아침부터 가족 단위부터 혼자 온 사람까지 다양한 규모와 연령대의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카페는 1층부터 3층까지 높은 창고가 있어서, 조용하게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도, 아이와 함께 편하게 방문하고 싶은 사람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강태선 대표는 백범 김구 선생 말씀의 인용으로 시작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라고 김구 선생께서 말씀하셨죠. 저는 정원이 곧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써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말처럼 AAM 정원은 복합적인 문화 공간 그 자체였다. 뒷마당과 연결된 테라스 공간에선 전시들 뿐만 아니라 버스킹, 연주회 등 매번 다른 기획의 문화 예술을 넓은 공간의 자연과 함께 향유할 수 있었다. 정원 곳곳의 다양한 꽃 중 특히 유럽 꽃들이 눈길을 끈다. 강 대표는 영국 마켓 스타일로 정원을 조성하고, 그에 맞춰 건물 인테리어를 구상하여 세련되고 간결게 꾸몄다. ‘진주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진주의 자랑이에요’ 라는 방문객의 반응은 강 대표가 정원을 일구는 또다른 원동력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과거·현재·미래가 있듯 자연 또한 정해진 시기에 꽃을 피우죠. 꽃을 키우면 아이들 정서도 치유되고 성취감을 느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에, 저는 가족 간에 정원을 꾸미는걸 추천합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겨워할 때 방문객들에게 꽃 무료 나눔 행사도 열었다. 올 어바웃 미(All About Me)라는 이름의 풀이처럼, 강 대표와 카페 AAM은 모든 사람들과 정원을 향유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3~4시간이 걸리는 물 주는 일조차 오히려 그 시간이 꽃잎 하나 하나 더 가깝게 볼 수 있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라고 하는 강 대표의 모습에서 정원에 대한 그녀의 진심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정원을 일군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아이들과 정원의 꽃을 이용한 미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강 대표는 “앞으로도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며, 실내 미니정원에 대한 견문과 지식을 넓혀 지금의 정원에 활용하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라고 한다. 꽃은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가족과 화합을 하게하고 사람 사이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의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녀노소 꽃을 좋아하듯, 온 연령층에 사랑받고 있는 Cafe AAM가 꽃 그 자체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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