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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

진주가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이성자 화백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평생을 작품활동에 전념했습니다.
밤하늘을 아로새기는 은하수처럼 세상에 남긴 이성자 화백의 족적을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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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 1949=0, 1950 - 1959=1, 1960 - 1969=2, 1970 - 1979=3, 1980 - 1989=4, 1990 - 1999=5, 2000 - 현재=6
1918 06월 03일 전라남도 광양 외조부 집에서 아버지 이장희의 여덟 번째 아이이자 재혼한 어머니 박봉덕의 첫째딸로 태어나다. 아버지는 규율을 중시하고 권위 있는 가장이었으며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온화한 사람이었다.
1924 경남 김해 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일제 치하에서 군수로 일하던 아버지는 어린 성자를 공식문화행사에 자주 데리고 다녔는데 수로왕릉의 제의에 간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한다. 대자연 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왕릉에서 행해지던 장엄한 행사들의 경건함과 엄숙함에 크게 감명받곤 했습니다.
1925 아버지가 창녕 군수로 부임하여 가족들은 창녕으로 이사한다. 창녕 화왕산 아래 위치한 집에 살면서 남매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자라났다. 학교 전시실에 있는 신라 토기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고 풍성한 역사적, 자연적 배경 속에서 이성자의 감수성과 미감이 형성된다.
1927 아버지가 은퇴하여 진주에 정착하다. 그림과 서예를 익히고 집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문인화를 보고 자라다.
1931 진주 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다. 유교 사상은 물론 서양 학문도 접하면서 미술과 문학 과목에 소질을 보인다. 매번 진주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저는 깊은 감흥에 사로잡혔습니다. 젊은 시절, 밤을 꼬박 새워가며 책을 읽던 그곳… 학교 도서관의 문이 닫힐 때까지, 빅토르 위고, 모파상, 발자크 등 서양 작가들의 책과, 렘브란트, 세잔, 반 고흐 등의 미술 서적을 탐독하곤 했습니다.
1935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다.
단식 투쟁 끝에 가정학을 공부한다는 조건하에 도쿄 짓센여자대학으로 유학가다. 1882년 시무다 우다코가 설립한 짓센여대는 서구의 신학문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진보적인 교육 기관이었다. 이성자는 200여명의 가정학과 동기생들과 수리, 기계, 양재, 건축, 영양학, 의학, 섬유, 심리학, 요리 등 다양한 과목을 배운다. 특히 건축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1938 짓센여자대학 졸업 후 귀국하다. 부모가 정한 경성제국대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생 신태범과 결혼하여 서울 효자동에 신혼집을 차리다.
1939 첫째 아들 용철 낳지만 이듬해 사망하다.
1941 둘째 아들 용석 출생하다.
1943 셋째 아들 용학 출생하다.
1945 한국 독립
넷째 아들 용극 출생하다. 아들 셋을 키우며 생활한 이 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회고한다. 어머니로서 감성과 경험이 있는 것을 긍지로 여기고 그것이 예술을 위한 훌륭한 토양이라고 말한다.
1946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가 별세하여 큰 슬픔에 빠지다.
1948 셋째 아들의 교육을 위해 남편과 떨어져 서울 삼선교에서 생활하다.
1950 한국 전쟁 발발.
1951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고 세 아들과 헤어져 절망 속에서 부산으로 피난가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주불영사관 서기관 손병식의 도움으로 도불하다. 즐거웠던 추억이며, 가슴 아픈 기억들, 모든 것이 태평양 한가운데 파묻혀 사라져 갔다. 평화로운 나라 불란서(프랑스)... 불어 단어 한 자 모르는 채로. 가진 것 없는 무일푼의, 무명의 처지로서 이국땅에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이국땅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1953 의상디자인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선생이 이성자의 재능을 간파하고 순수 미술로 전향하기를 권하다. 선생의 추천으로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에 입학하다.
1954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이브 브라예Yves Brayer(1907~1990)에게 구상화를 배우다. 이후 앙리 고에츠Henri Goetz(1909~1989)에게 추상화를, 오십 자드킨Ossip Zadkine(1890~1967)에게 조각을 배우다. 이성자는 브라예의 고전 화풍보다 고에츠의 현대적인 추상 미술에 더 관심을 둔다.
1955 몽파르나스 보지라르가 98번지98 Rue de Vaugirard에 한 평 남짓한 다락방을 얻고, 이곳에서 4년 동안 거주하며 주로 정물과 풍경을 그린다. 하인들이 쓰던 이 방에서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을 완성하다. 수만 번 정물을 쳐다보며 그리다가 나 혼자 도를 통했다. 정물이 살아 있다고 느낀다.
고에츠의 조교(1955~56)로 발탁되지만 순수한 조형성만 추구하는 고에츠와 맞지 않아 2년 후 떠난다. 고에츠는 이성자를 여러 갤러리에 추천하고 국제적인 작가들과의 교류를 도와준다.
네덜란드에서 렘브란트 전시를 관람하고 크게 감동받다. 굉장히 감동을 했지. 배경이 검은데 이렇게 화려하게 나타난 거는 그 ‘나’라는 인간은 저런 거라. ‘아무리 비극이 와도 삶은 이렇다.’ 살아 있다면 이성자는, 이런 사람이 이성자.
1956 《국립미술협회전Société Nationale des Beaux-Arts》에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를 처음으로 출품하다. 당시 이 작품은 전시장 중앙에 전시되었다. 평론가 조르주 부다이유Georges Boudaille(1925~1991)의 호평을 받고 『레 레트르 프랑세즈Les Lettres Françaises』에 소개되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다.
이탈리아 카라라 등지를 여행하며 대리석 산의 장관을 음미하다. 고에츠 부인의 도움으로 헤이그에 머물며 두 번째 네덜란드 여행을 하다. 이준 열사 묘를 참배 하고 반 고흐의 작품에 매료된다. 당시 제작된 <암스테르담 항구>의 어두운 배경과 노란색은 렘브란트와 반 고흐에 대한 영향을 보여주며 추상화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
파리 시립근대미술관에서 니콜라 드 스탈Nicolas de Staël(1914~1955)의 전시를 보고 큰 영향을 받는다.
오베르뉴에 있는 기요메 갤러리Galerie Auvergne Guillaumet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한국에 대한 강연을 하다. 당시 오베르뉴의 누스툴레에 있는 동료 화가 루이즈 들로르메Louise Delorme 집에 기거하면서 어린 시절 창녕의 소나무, 폭포 등을 되찾았다고 술회한다.
로베르와 미슐린 페로Robert et Micheline Pérot 부부의 (옛 풍차를 개조한) 아틀리에Atelier du Vieux Moulin에서 처음으로 도예를 배우다.
1957 고에츠 제자들의 합동전 《고에츠 아틀리에의 7인의 화가7 Peintres de l’Atelier Goetz》에 참가하다. 조르주 부다이유가 「르 몽드Le Monde」지에 이성자만 싣는다.
영국 출신 판화가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Stanley William Hayter의 공방에서 판화를 배우지만 금속판 위주의 작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동료 화가 로돌프 뷔시Rodolphe Buchi의 목판화 포스터를 접하고 매력을 느끼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갔던 사찰의 스님들이 꽃이나 부처가 새겨진 목판화를 도시에 팔던 일을 떠올린다.
뉴욕에서 열린 《젊은 프랑스 작가의 현대회화전Modern Paintings by a Selected Group of Contemporary Younger French Artists by order of Art Investors Corporation》에 참가하다. 친구의 초대로 칸에서 작업하던 중 화상 카발레로와 알게 된다.
1958 파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라라 뱅시 갤러리Galerie Lara Vincy에서 개최하다. 예술과 우주, 동양과 서양, 지구와 시간, 생을 주는 모체인 여성과 대지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동양적이면서 서정적인 추상 양식을 인정받는다. 목판화로 포스터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하다.
조르주 부다이유가 화실을 방문하고 생테즈 갤러리Galerie Synthèse에 이성자를 소개하다.
1959 파리 16구 라느라그가 10번지10 Rue du Ranelagh로 이사하다. 아파트 창 밖의 뮈에트Muette 구역을 가로지르는 터널 풍경은 부모 곁을 떠나 동경으로 떠나던 날, 처음으로 탔던 기차와 진주역을 회상하게 한다. 이 시기에 대지를 배경으로 삼아 직선, 삼각형, 사각형, 원 같은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림에 접목시키는 조형 방법을 완성한다. 서양의 예술은 철학적인 기반이 부족하다. 그래서,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나의 그림의 주제인 ‘여성과 대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기하학적인 부호들을 취하고 있다. 시간과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기호로써 직선, 삼각형, 사각형, 원(— △ □ ○)을 택한 것이다.
1960 한국 이승만 정권 붕괴.
아버지의 정원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흰 거울>, <목신의 피리> 등을 완성하다.
파리의 페루Perou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평론가이자 훗날 프랑스 문화성 현대미술 담당관이 되는 질다스 파르델Gildas Fardel(1906~1997)이 이성자의 작품에 주목하여 후원자가 된다.
1961 칸의 카발레로Cavalero 갤러리에서 ‘여성과 대지’를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하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본 알베르토 마넬리Alberto Magnelli(1888~1971)와 만나 서로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친구이자 동료로서 깊은 우정을 나눈다. 이성자는 마넬리를 통해 장 아르프Jean (Hans) Arp(1886~1966),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1885~1979)와 같은 작가들과 친분을 갖게 된다. 또한 마넬리 집 정원에 폭풍으로 쓰러진 호두나무 가지를 주워 잘라서 파내고 채색하여 스탬프로 이용하면서 목판에 집중하게 된다.
목판화 작업을 꾸준히 권유하던 질다스 파르델이 이성자를 당시 가장 유명한 갤러리인 샤르팡티에 갤러리Galerie Charpentier에 소개한다. 파리의 미국 예술가센터에서 개최된 《몽파르나스의 대작Grandes Toiles de Montparnasse》전에 <갑작스러운 규칙>을 출품하여 비평가 미셸 쇠포르Michel Seuphor의 주목을 받는다.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누보레 알리슴전>에 참여해 보석함의 보석들>을 선보인다. 파리의 미술국가센터에 <진동의 원리>를 전시
1962 생테즈 갤러리에서 ‘여성과 대지’를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하다. 조르주 부다이유가 주관하고 도록의 서문을 작성하다.
샤르팡티에 갤러리의 《에콜 드 파리(L'Ecole de Paris)》에 <내가 아는 어머니(Une Mère que je Connais)>를 출품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고, 갤러리 관장인 레이몽 나성타Raymond Nacenta의 관심을 받다. 프랑스 문화성에서 이성자 작품을 구입하고, 보베Beauvais의 태피스트리 공장의 주문을 받아 원도판을 제작하다.
1963 류블랴나Ljubljana에서 열린 《제5회 국제판화비엔날레5e Biennale Internationale de Gravure》에 <먼 바다>를 출품하다. 나무 자체의 형상을 목판에 직접 새기는 등 자유롭고 대담한 목판화를 제작하다. 나는 나무를 있는 그대로 선보인다. 다시 말해서 숲 속에서 산보 도중에 나무 형태를 고르고, 나무의 자유로운 형체 그대로 조각을 한다. 나는 이미 준비된 직사각형의 목판, 마치 감옥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사각형의 형태를 벗어나는 것이다. 어떤 형태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는 나무와 더불어 맘껏 자유로운 것이다.
1964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단 한 판으로 찍어낸 이성자 목판화 개인전을 개최하고, 조르주 부다이유가 도록의 서문을 쓰다. 갤러리에서 이성자 목판화집 『일주일les jours de la Semaine 』을 40부(editions) 출판하다. 레이몽 나성타를 통해 도록과 작품 정보 등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다.
파리 시립근대미술관의 《살롱 콩파레종Salon Comparaisons》과《제20회 살롱 드 메Salon de Mai》에 참가하다.
1965 한불 문화협정 체결.
15년 만에 한국에 귀국하여 세 아들을 만나다. 동아일보 후원으로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서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다. 금의환향, 충격적인 일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국내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다. 시인 조병화(1921~2003)가 이성자의 <오작교>를 위해 시를 짓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김기철과 이강세의 작업실과 가마를 빌려 도자기를 빚는다.
우나가미 마사오미의 주선으로 이치방 간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토미나가 소이치, 레이몽 나성타, 조르주 부다이유가 전시 도록 글을 쓰다.
1966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서 작품 활동에 전념하다. 원, 삼각형, 사각형 등이 조합된 특유의 조형기호들이 점차 두드러지다.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의 교수 리카르도 리카타Riccardo Licata(1929~2014)로부터 한 달 동안 모자이크 기술을 배우다. 투렌느Touraine의 루루 베코네Le Louroux-Beconnais 중학교에 최초의 모자이크 <배움의 종소리(Le chant des cognées)>를 제작하다.
이집트 여행을 가다.
1967 샤르팡티에 갤러리의 주선으로 로제 말레르브 나바르Roger Malherbe-Navarre가 관장인 파리의 뤼미에르 갤러리Galerie de la Lumière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도록 서문에 조르주 부다이유가 이성자의 작품을 ‘극동을 위한 여권Passeport pour l’Extrême-Orient’이라고 표현하다.
1968 프랑스 68혁명 발발하다.
이성자는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 동기들을 통해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된 잡지사 기자 출신 크리스토프 콜로Christophe Collot를 만나기 위해 가끔 남프랑스 투레트 쉬르 루Tourrettes-sur-Loup를 방문하면서 여름용 아틀리에로 집과 땅을 매입한다. 샤르팡티에 갤러리 관장 레이몽 나성타가 파리 근교의 뇌이Neuilly에 새로 연 갤러리에서 개관전으로 이성자를 초대한다. 앙리 갈리카를르Henry Galy-Carles가 서문을 쓰다.
어머니 박봉덕 별세하다.
1969 미국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하와이를 여행하면서 '중복'이라는 새로운 모티브에 눈 뜨다. 뉴욕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거대한 집단이며 조밀함, 그 휘청이는 고층의 마천루 숲 등,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압력을 느꼈다. 자정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서서 밖을 내다보자 층층히 포개져 누워있는 고층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기불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 때, 나에게 중복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성자는 '중복'으로 이행하면서 이제 땅, 아이들에게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땅은 다 했다. 땅은 다 했다. 예술가가 그 작품이 인기가 있다고 그것만 계속하면 말살이다. 내가 순수한 예술가 같으면 앞서가야지. 언제나. 일부러 앞서 가야 된다.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 그 자리 있음 내가 죽는 거지.
스위스 생갈렌(St.Gallen)의 에르케(Erker) 출판사가 이성자의 목판화집 『시조(Sijo)』를 출판하다. 황진이, 이조년의 시조 5편이 이성자 목판화로 조형되다.
에프렘 타보니(Efrem Tavoni)에 의하여 조직된 《제 1회 국제 현대목판화 트리엔날레(Ie Triennale internazionale della Xilografia contemporanea)》에 윤명로, 유견열, 서승원, 김상유, 배융과 함께 참여하다. 목판 예술의 전통이 있는 나라의 작품답게 수준이 높다는 호평을 받다.
도쿄의 세이부 갤러리에서 유화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연다.
1970 한불 문화협정으로 조선일보 주최 《프랑스 현대 명화전》진행을 맡아 피카소, 브라크 등 43명의 작품 128점을 전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건축전시실에서 조선일보와 프랑스대사관 주관으로 이성자 개인전을 개최한다.
낭트Nantes의 벨뷔 종합학교Groupe Scolaire Bellevue에 140x180cm의 모자이크 작품 <남겨진 글Scripta Manent>을 제작하다.
1971 파리 프로세시옹가 49번지(49 Rue de la Procession)로 이사하다. 이탈리아 볼로뉴(Bologne)의 누오바 로지아(Nuova Loggia) 갤러리에서 목판화 개인전을 개최하다. 《제 27회 살롱 드 메(Salon de Mai)》전에 참가하여 대형 판화 <우주(Cosmos)>를 선보이다.
프랑스 문화성이 주문한 태피스리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다. 이듬해 오뷔송 공장(Manufacture d'Aubusson)에서 350x300cm의 타피스리가 완성되다.
스웨덴 스톡홀름Stokholm에 있는 소네Sonet출판사에서 이성자 판화집 『사계절과 나(Quatre saisons et moi)』를 50부(editions) 발간하다.
그리스 시미섬을 여행하다.
1972 파리 쉬렌느Suresnes의 라귀델 종합학교Group Scolaire Raguidelles에 230x1100cm의 모자이크 벽화 <행성들Les Planètes>을 제작하다.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에서 열린 《제4회 라벤나 국제비엔날레 4e Biennale Internationale de Ravenna Morgan’s Paint》에 출품하다. 라벤나 시에서 이성자의 판화를 여러 점 구입하다. 이 외에도 다수의 판화전에 참여하다. ‘중복’에서 벗어나 ‘도시’로 전환하다. 1958년 이래 기본으로 택한 간단한 형태 중에서 나는 원만을 오로지 원형만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은 돈다… 시작도 끝도 없이… 항구적인 생명… 끊임없는 운동… 원, 그것은 유성의 형태… . 나는 오로지 원형만을 그릴 것이다. … 무한을 느끼게 하는 원형과 음양의 대비. 그런 동양적인 착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색의 원형에 곁들여지는 선들은 이를테면 면과 면을 잇는 감각적이고 기능적인 요소들이다.
1973 파리 그랑팔레의 《제14회 오늘의 대가와 젊은 화가전Grands et Jeunes d’Aujourd’hui》에 참가하다. 스웨덴 보라스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에콜 드 파리전L'Ecole de Paris》에도 참가하다.
1974 스위스 베노 갤러리Galerie Beno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조르주 부다이유의 소개로 파리 솔레이유Soleil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출품작이 모두 매진되어 중앙일보 기사(4월25일자)에 게재되다.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중복’과 ‘도시’ 작품들로 개인전을 개최하다. 가스통 딜Gaston Diehl이 도록 서문을 쓰다. 프랑스 파리 이브 브륀 화랑에서 개인전을 한다.
1975 대립적인 요소들의 조화로운 결합과 상생을 암시하는 ‘음과 양’, 평면의 캔버스에 나무를 붙여 작업함으로써 회화에 조각적 특성을 더한 ‘초월’에 2년 동안 몰두하다. 나는 음과 양이라든지, 동양과 서양, 죽음과 생명과 같이 두 개의 상반된 것을 한 화면 위에 창조해 내기를 원한다.
브라질 《제13회 상파울로 비엔날레Bienal de São Paulo》에 김환기, 남관, 이응노와 함께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도시>와 <음과 양> 대작 6점을 출품하다. 브라질의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와 루초 코스타Lúcio Costa의 작업을 보기 위하여 브라질리아, 이과수 폭포, 파라과이 국경 등을 방문하여 대자연과 모던한 대도시의 조화를 보고 감명받다. 이중판화 - 첫 번째 판: 바닥은 대상의 형체가 에어 브러시에 의해 주어진다. 두 번째 판: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서, 찍거나 혹은 문지르기, 공기는 환경이며, 찍거나 문지르기는 시각적이며 구체적인 재료이자 작용이 된다.
1976 프랑스 카뉴쉬르메르Cagnes-sur-Mer의 그리말디 성 박물관Château Musée Grimaldi 에서 ‘초월’을 주제로 회화, 판화, 도자기까지 총 64여 점으로 개인전을 개최하다. 카뉴쉬르메르 시장 피에르 소베고Pierre Sauvaigo와 모리스 알망Maurice Allemand이 도록에 글을 쓰다.
자연에 대한 추구를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초월’ 작품을 파리 그랑팔레의 《제 17회 오늘의 대가와 젊은 화가전》에 출품한다.
이 밖에도 프랑스 유네스코의 《대화전 Dialogue》,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의 《재불한국화가전Peintres Coréens à Paris》등에 참여하다.
1977 산, 바다, 숲 등을 주제로 하는 ‘자연’ 시대를 시작하다.
카발레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도록에 시 「시간을 초월하는 것L’Intemporel」이 수록되다.
자크 마타라소 서점을 통해 평생의 친구이자 협력자인 누보 로망 문학가 미셸 뷔토르Michel Butor(1926~2016)와 만나다. 목판화에 미셸 뷔토르의 캘리그래피를 도입하여 공동 작업을 하다. 75x195cm 크기의 병풍 형태 이중판화 15점을 받은 미셸 뷔토르는 「샘물의 신비Replis des Sources」라는 시를 쓰다. 우리의 첫 번째 공동 작업은 유럽에서 찍은 판화로 한국에서 제작한 병풍이었다. (…) 한국과 프랑스가 지리적, 문화적으로, 극과 극으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을 프랑스에서 만났으니 이것이 바로 인생의 묘미!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미셸 뷔토르와 오광수가 도록에 글을 쓰다. 귀국할 때마다 진주의 부모님 묘를 찾다. 창녕 화왕산 암자로 가는 도중 흰 눈으로 덮힌 풍경 속에 드러나는 절의 지붕 밑 단청에서 강한 영감을 받다.
1978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에서 《재불화가 이성자 초대전》이 개최되다. 2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미셸 뷔토르, 가스통 딜, 카뉴쉬르메르 박물관 명예관장 DJ 클레르그D.J. Clergue, 파리 현대미술관장 자크 라세뉴Jacques Lassaigne가 글을 쓰다.
1979 <투레트의 밤Une nuit de Tourrettes> 시리즈를 제작하다.
니스에 있는 자크 마타라소 서점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앙리 갈리카를르Henry Galy-Carles가 서문을 쓰다.
이본느 알망Yvonne Allemand이 생테티엔Saint-Étienne의 문화센터에서 이성자, 이브 밀레Yves Milet, 제임스 귈레James Guilet 《3인의 판화가전Trois Graveurs》을 개최하다.
1980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Chemin des Antipodes>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이제 극지로 가는 길은 한국으로 가는 길이다.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이다. 가장 긴 길이다. 가장 자유로운 길이다. 가장 순수한 길이다. 그리고 가장 환상적인 길이다. … 거대한 태양이 지평선에서 솟아오른다. 깨끗한 공기가 아침 이슬을 변화시켜 유리창을 때린다. 그 순간 나는 태어났다. 이 세계의 총합, 가장 절대적인 세계. … 내가 사랑하는 나라로 가는 길이다.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 반 고흐의 집Maison de Van Gogh에서 로제 타글리아나Roger Tagliana가 주최한 개인전을 열고, 미셸 뷔토르가 서문「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Chemin des Antipodes」을 쓰다.
장 쉬에즈 협회Association Jean Chieze에서 개최하여 파리 시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현대 목판화전Gravure sur bois contemporaine》에 참여하다.
발로리스의 《제7회 국제 도자기 비엔날레7e Biennale International de Céramique d'Art》에 처음으로 참가하다.
1981 자크 마쏠 갤러리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연작을 중심으로 개인전을 열고, 앙리 갈리카를르가 서문을 쓰다.
파리의 주불 한국문화원Centre Culturel Coréen에서 재불 30주년 기념 개인전을 개최하여 이성자 화백에 경의를 표한다. 서울의 주한 프랑스문화원Centre Culturel Français에서는 이성자 재불 30주년 기념 포스터전을 열다. 30년의 작품 생활을 정리한 49개의 포스터가 전시되다.
겨울, 경기도 광주 초월의 이천 가마에서 ‘연잎’ 도자에 몰두하다.
통도사 주지 성파 스님(1939~)에게서 일무라는 호를 받다. 일무에는 무라는 뜻이 있으니까 생명도 나오고 사도 나오는 거야. 무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무가 원이다. 원은 생명덩어리인데 생명과 죽음과 그런 게 없다. 여기에서 만사가 다 나오는 거다. 스님과 내가 대화를 했다. 내 생각과 똑같았다. 성파 스님은 나이를 초월하는 분으로… 내가 거기서 도자기를 하면… 내가 작가니까 생명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내 자식이니까. 원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 호가 일무가 되었다.
1982 룩셈부르크 국립박물관의 《미셸 뷔토르에게 영감을 준 20인의 예술가(Vingt artistes du livre avec Michel Butor)》전에 참가하여, <샘물의 신비(Replis des Sources)>를 소개한다. 이성자는 200x100cm 크기의 대형 연꽃 목판화 시리즈를 제작하고, 이는 미셸 뷔토르에게 큰 영감을 준다. 자크 마타라소 서점은 이성자의 목판화와 미셸 뷔토르의 시를 엮은 '목판화의 꽃다발(Bouquet d'Impressions)'을 출판한다. 이성자는 대형 판화와 도자기에만 몰두한다.
파리 퐁피두센터와 NRA 갤러리에서 열린 《예술의 주제(Premier Manifeste du Livre-Artiste, Livre-objet)》전, 발로리스 《제 8회 국제도자기비엔날레》에 참여한다.
1983 파리 그랑팔레의 《보자르 국립조형예술협회전 Société Nationale des Beaux-Arts》에 대형 목판화 <연꽃> 시리즈를 선보인다.
《제39회 살롱 드 메》, 르 베리에 가의 《예술가의 집 83전 La Maison des Artistes, Exposition 83》, 그리고 그랑팔레에서 열린 《제26회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출품하다.
1984 3월, 한국에 귀국해 화집 출판을 준비하고, 김기철 도예제작소에서 '연꽃' 도자를 제작하다.
투레트 아틀리에의 대문 모자이크를 완성하고 이름을 은하수(Rivière Argent)로 명명하다. 아틀리에에서 목판화 '기'시리즈를 제작하다.
파리 유네스코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Chemin des Antipodes)> 작품 15점과 미셸 뷔토르의 자필 시가 적힌 '기' 시리즈를 전시하다. 프랑스 동북부 랭스에서 개인전을 가지다. 미셸 뷔토르를 중심으로 한 작품 교차(Œuvres Croisées) 방식의 전시로, 뷔토르의 자필 시와 함께 '샘물의 신비(Replis des Sources)'와 '기' 시리즈를 출품하다. 벨기에 리에주에서 《미셸 뷔토르와 함께 본다(Voir avec Michel Butor)》전에 <샘물의 신비>를 뷔토르의 자필 시와 함께 전시하다.
1985 열화당에서 이제까지의 작업을 총정리하는 화집 『이성자』(열화당, 1985)를 출간하다. 국문, 영문, 불문의 3개 국어로 구성되어 있다. 미셸 뷔토르가 동녘의 대사(L'Ambassadrice de l'Aube)라는 글을 쓰고 유홍준, 윤철규가 편집하다. 작품 도판 88점, 삽도(사진, 포스터 등의 도판)가 44점 수록되다.
화집 출판 기념으로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이성자 60년대전 대지와 여인》전을, 로이드 신 갤러리에서는 《이성자 화집출판기념목판화전 1960-1964》을 열다.
1986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국문화원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알랭 요프로이Alain Jouffroy가 서문을 쓴다.
파리의 노엘르 갈 갤러리, 니스의 자크 마타라소 서점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파리국립현대미술센터와 낭트에서의 《미셸 뷔토르와 시화합전Œuvres croisées avec Michel Butor》에 참여하다. 도쿄 UNAC에서 개인전 《이성자, 극지로 가는 길》이 열리고, 이성자 특집호로 발간된 UNAC Tokyo 10월호는 서정주의 시 「이성자」를 싣다.
통도사 서운암에서 성파 스님과 함께 도자에 전념하다. 존재하기 위하여, 아니 창조하기 위하여 나는 나무를 파고 흙을 주무른다. … 흙은 내가 창조할 수 있는 데까지 나를 끌어다준다. 인간은 결국 흙으로 되돌아가고 흙에서 모든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 존재의 윤회에 나는 모든 것을 내맡겨버리고 싶다.
1987 경기도 광주 우출효에서 도자작업을 하다.
그랑팔레에서 개최된 《제42회 살롱 드 메》와 《제28회 오늘의 대가와 젊은 화가전》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출품하다.
1988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초대전에 471점의 작품을 출품하고 이경성, 미셸 뷔토르, 서정주가 도록 글을 쓰다.
니스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미셸 뷔토르가 도록에 「판화에 대한 조망Aspects de l’œuvre gravé」글을 쓰다
판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롤러를 쓰기 시작한다.
1990 주한 프랑스문화원과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열다.
1991 프랑스 정부 예술원으로부터 예술문화공로훈장 슈발리에장Chevalier dans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을 받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자유의 회고전 Mémoire de la Liberté》에 판화 작품을 출품하다.
갤러리현대와 진주 영남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1992 직접 구상한 아틀리에 <은하수Rivière Argent>를 준공하다. ‘음’에 해당하는 것은 판화 작업실이고, ‘양’에 해당하는 것은 회화 작업실이다. 회화는 캔버스 위로 쌓아 올리므로 ‘양’의 모습이고, 목판화는 오목하게 파내는 것이니 ‘음’에 해당된다. 이성자는 낮에는 자연광에서 회화를, 해가 지면 목판화를 했다. 동양 사상에서 낮은 ‘양’, 밤은 ‘음’이 된다. 이처럼 ‘양’과 ‘회화’를, ‘음’과 ‘목판화’를 연결하여, 양과 음이 순환하듯이 유화와 목판화도 연관을 갖고 조형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성자는 아틀리에를 ‘내 인생의 완성을 시도한 작품’이라고 하다.
1993 판화 카탈로그 레조네 Seund Ja Rhee: Catalogue raisonné de l'oeuvre gravé, 1957-1992 (Editions Fus-Art, 1993) 를 발간하다. 정확한 기록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달은 이성자는 목판의 나무, 종이의 재질, 판의 개수, 에디션 넘버 등을 작품 이미지와 함께 상세하고 명확하게 표기하여 그간의 판화 작품들을 집대성한다.
1994 프랑스 누아지 르 그랑Noisy le Grand의 에스파스 미셸 시몽Espace Michel Simon에서 《목판과 깃발전Bannières et bois gravés》을 개최하다. 니스 자크 마타라소 서점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미국 시카고 포스터 커뮤니티 센터Foster Community Center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이경성이 서문을 쓴다.
1995 <우주> 연작을 시작하고, 작품 제목에 별자리 이름이 등장하다. 서양의 과학적 눈으로 본 우주와 동양 철학의 시각에 비친 우주를 조화시켜 우주 연작을 하겠다.
서울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재불 45년 이성자 초대전》을 개최하다. 미셸 뷔토르가 「비상: 이성자 화백을 위하여」서문을 쓰고, 방상훈, 유준상이 글을 쓰다.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é Internationale des Arts에서 열린 《오늘의 판화가전 Graveurs d'Aujourd'hui》에 참여하다.
1996 주불 한국문화원에서 판화전을 열다. 미셸 뷔토르가 서문 '목판으로 만든 식탁(Les Oracles des Bois)'을 쓰다.
유네스코 50주년 기념전 《에콜 드 파리 1945-1975(Ecole de Paris 1945-1975)》전에 참여하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에콜 드 파리의 작가로 이름을 올리다.
아틀리에 '은하수'에 대한 책 Rivière Argent(Orme, 1996)을 출판하다. 파트릭 질 페르생(Patrick-Gilles Persin)이 머리말을 쓰고, 미셸 뷔토르가 글을 쓰다. 아틀리에 내 ∙ 외부의 사진을 촬영하고, '가장 큰 규모의 작품'으로서의 <은하수>를 기록하다.
1997 서울 세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유준상이 서문을 쓰다. 미국 워싱턴국제통화기금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미셸 뷔토르 는 「여대사의 세 아들들을 위하여Pour les Trois Fils de l’Ambassadrice」라는 글을 쓴다.
아틀리에 은하수Rivière Argent의 준공 검사가 통과되어 6월28일 한국의 지인들을 초대하여 개관식을 가지다. 제라르 보시오Gerard Bosio 알프마리팀 주의회 관광문화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한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듯이 이 화백의 미술관이 이 지역과 한국의 문화적 접점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범세계예술인협회 서정주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경주를 여행하다.
1998 프랑스 투레트르방Tourrette-Levens의 에스파스 쉬박Espace Chubac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투레트르방 시장 알랭 프레르Alain Frère가 서문을 쓰다. 도쿄 요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우나가미 마사오미가 도록의 서문을 쓰다.
예술의 전당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고 유준상과 미셸 뷔토르가 서문을 쓴다.
1999 1월, 양산 통도사와 고향 진주를 방문하다.
프랑스 시타델 박물관Musée de la Citadelle, Chapelle Saint-Elme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미셸 뷔토르가 서문 「아틀리에의 눈꺼풀Les Paupières de l’Atelier」을 쓰다.
김대중 대통령이 시상자로 참석한 제7회 KBS 해외동포상 시상식에서 예술 부문을 수상하다. 이성자가 파리에 머물렀던 기간의 흔적을 담은 특집 영상이 KBS에서 제작되다.
2000 이성자 후원 모임 ‘이성자의 친구들Les Amis de Seund Ja Rhee’이 결성되었고, 앙투안 페트리Antoine Pétri가 회장을 맡다.
2001 파리 에스파스 피에르 가르뎅Espace Pierre Cardin에서 재불 50주년을 기념하는 개인전을 개최하고, 미셸 뷔토르와 클로드 부레Claude Bouret가 서문을 쓰다. 미셸 뷔토르는 전시회 기념사에서 50년 전 이국만리 프랑스에 도착한 이성자 화백에게 남은 것은 그림뿐이었다고 말했다.
푸른 색조의 <우주> 연작에 노란색이 등장하다.
2002 프랑스 정부 예술원으로부터 ‘예술문화공로훈장 오피시에장Officier dans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을 받다.
그르노블 문화협회에서 개인전 《미래도시를 위한 설계Plan des Nouvelles Villes du Futur》를 개최하다.
서울 시립미술관의 개관전 《한민족의 빛과 색》에 작품을 출품하다. 이 전시는 일본 아이치현, 오사카, 이와테현을 순회한다.
발로리스의 마넬리 도자기 미술관Musée Magnelli, Musée de la céramique de Vallauris 관장 산드라 베나드레티 펠라르Sandra Benadretti Pellard를 처음 만나다. 이후 영향력 있는 조력자가 되다.
2003 마넬리 도자기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관장 산드라 베나드레티 펠라르, 미셸 뷔토르, 도미니크 사씨Dominique Sassi 등이 도록 구성 및 서문을 쓰다.
2004 제1회 진주여자고등학교 ‘자랑스러운 일신상’을 수상하다.
파리의 오귀스트 블레조 서점 갤러리Librairie-Galerie Auguste Blaizot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2006 한불 수교 120년을 기념한 《재불 여성작가 8인전》에 초대되어 프랑스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로서의 미술사적 위치를 확인하다. 니스의 루이 뉘세라 도서관Bibliothèque Louis Nucéra과 로르 마타라소 서점 갤러리Librarie-Galerie Laure Matarasso에서 개인전을 가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미셸 뷔토르, 유목적 글쓰기전Michel Butor l'Ecriture nomade》에 참여하다.
2007 05월 03일 『이성자, 예술과 삶』(생각의 나무, 2007)이 출판되다.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산드라 베나드레티 펠라르와 심상용이 글을 쓰다.
진주 여자고등학교 대운동회에 참여하고 동문을 중심으로 ‘진주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시민 모임’이 결성되다.
2008 경남 도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이성자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376점의 작품 기증을 위해 ‘기증 협약식’을 가지다.
고향 진주는 나에게 영원한 '모천'이다. 진주의 추억은 부모님의 자애와 더불어 내가 일생 동안 예술의 구도자로서 혼신을 다하는 데 넉넉한 자양이 됐다.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진주를 흠모하고 기리는 것은 나의 당연한 도리이다.
니스 아시아미술관에서 개인전 《미래의 새로운 도시: 이성자 회화 근작전Villes Nouvelles du futur: peintures récentes de Seund Ja Rhee》을 개최하다.
2009 03월 08일 투레트에서 노환으로 타계하다. 회화 1,300여 점, 판화 12,000여 점, 도 자기 500여 점 등을 남기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하다.
제10회 ‘한불 문화상Prix Culturel France-Corée’을 수상하다.
리움 삼성미술관의 한국미술기록보존소 주관 『한국미술기록보존소 구술녹취문집 25: 이성자』(리움 삼성미술관, 2009)이 출판되다.
2015 7월 16일 이성자가 기증한 367점의 작품을 토대로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 개관하다.
2018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이성자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개최하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이성자 탄생 100주년 기념전 《대지위에 빛나는 별》을 개최하다.
2019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소장품전 : 도시를 넘어 우주로》를 개최하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소장품전 : 우주를 향한 여정-이성자》를 개최하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아카이브》 상설전시를 시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