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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예술세계
예술세계

자연에 대한 관찰과 사색을 통해 한국인의 숨결과 삶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성자 화백은
강렬한 시각적 화법을 한없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성자 화백의
시작

이성자 화백은 1918년 외조부 댁에서 태어나 6주 후에 아버지가 있는 하동으로 귀가합니다.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지방군수를 지내신 까닭에 이성자는 창녕, 진주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24년 김해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25년에는 창녕으로, 1927년에는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가문의 터전인 진주에 정착합니다.

경남의 산과 들을 접하면서 보낸 이 시기의 추억들은 훗날 이성자의 작품세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931년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입학하여 1935년 제7회로 졸업하였으며 그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짓센여자대학에서 가정학을 전공하고 1938년에 졸업하였습니다. 1951년 한국동란이 한창이던 시기 서른셋의 나이로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의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 (Paris, Academie de la Grande Chaumiere)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성자 화백의
작품세계

1950년대 말부터 이성자의 작품들에서는 단순한 형태를 바탕으로 두텁게 칠한 마티에르 (Matiiere)를 느낄 수 있으며, 순수하고 밝은 색채를 구사하는 조형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구와 다른 동양적인 정서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작품들은 항아리, 십장생, 매화 등을 바탕으로 추상정물화 작업을 시도한 파리시대 김환기의 작품을 연상케 합니다. 또한 이때부터 시작된 ‘여성과 대지 (Femme-terre)’ 연작은 1968년까지 이어져 이를 통해 자연의 본질을 동양의 음양사상, ‘대지는 곧 여인’으로 운용하는 독창적인 조형적 감각을 형상화합니다.

또한 이성자는 1957년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 (Stanly William Hayter, 1901~1988)의 ‘아틀리에(Atelier)17’에서 판화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당시 차가운 금속판을 위주로 한 판화작업보다는 목판화의 매력에 끌린 이성자는 목판화를 ‘친밀한 동반자로서 허물없이 비밀스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로 평하였습니다. 작가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를 따라 깊은 산중에 있는 사찰의 판화공방을 방문했던 일’과 ‘스님들이 설을 맞아 꽃이나 부처상에 새겨진 목판화를 도시에 내다 팔던 일’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1969년 이성자는 미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거대한 도시 뉴욕은 이성자에게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켜 이후 연작 ‘중복 (Superposition)’을 통해 도시구조 앞에서의 인간의 감흥을 표출하게 됩니다. 겹쳐지고 교차하는 선과 면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이어서 1971년부터는 단순한 원형의 형태를 중심으로 더욱 강력하고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과 빨강, 파랑 등의 선명한 장식적 평면색으로 강조된 ‘도시(Cite)’를 발표합니다. 이성자는 동양의 음양사상을 원용한 요철을 원의 형태로 분리 또는 합치, 중복 등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을 조형화하였는데 이 요철관계의 도형은 이성자의 조형세계에서 상징적 표상이 됩니다. 즉,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높고 낮음, 밝고 어두움, 직선과 곡선 등의 상대성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1974년 제작한 ‘음과 양 (Yin et Yang)’, ‘초월(Intemporel)’은 “기계와 자연의 결합, 죽음과 생명, 동양과 서양 등 상반된 요소들의 결합으로 해석됩니다. 하나로 완결된 원이 아니라 둘로 나뉘어 합일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원을 통해 대립적인 요소들의 조화로운 결합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성자는 “음과 양이라든지, 동양과 서양, 죽음과 생명과 같이 두 개의 상반된 것을 화면 위에 창조해내길 원한다.”

이성자는 재불 14년만인 1965년에 귀국하여 판화 개인전을 가졌는데, 처음 비행기를 타고 오고갈 때 그 항로의 북극지대와 시베리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1980년대부터 ‘극지로 가는 길 (Chemin des Antipodes)’ 의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미술비평가 이구열은 “눈 덮인 산악들의 고결한 감명과 그 비경을 만들어낸 신에의 찬미가 담겨져 있다” 고 보았습니다. 강렬한 붉은 색과 깊고 푸른색은 영원히 변하기 않을 것 같은 설산과 대비되며, 그 위에 음양도형과 반원곡선의 찬란한 색동무늬들이 조형요소로 등장합니다. 한국과 프랑스, “두 개의 대척을 이루는 시간축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유기적 체계”로 이해됩니다. 이처럼 ‘극지로 가는 길’은 ‘현실과 이상’에서 끊임없이 서로 상충하고 보완하는 두 대척점의 조화에서 그 담을 찾을 수 있는 수수께끼이자 신비입니다. 1995년을 기점으로 ‘극지로 가는 길’에서 중심을 이루었던 만년설은 사라지고 ‘우주(Cosmos)’로 이어집니다.

1997년 이성자는 투레트 쉬르 루 (Tourrettes sur Loup) 에 자신이 직접 설계한 작업실 ‘은하수’를 완성하였습니다. 그곳은 프랑스 남부 니스 (Nice) 근처 해발 약 1,000m 에 위치한 아름다운 별장지대입니다. 1960년대 이후 화가를 황홀케 했던 투레트의 밤하늘은 바로 그녀의 회화세계의 한 밑바탕이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사색을 통해 이성자의 예술은 한국인의 숨결, 곧 생활의 구조를 한 올까지 분해한 다음 그것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창조합니다. ‘색동무늬 변환의 화가’가 펼쳐 보이는 밝고 화려한 색채는 화면을 한 부분 한 부분 수놓듯이 장식해 갑니다. 화폭에 담긴 수많은 점들의 무리들은 강렬한 시각적 느낌을 전달하며, 부분이 전체를 만들어내듯이 우리 무의식의 세계를 그 자체 의식의 세계로 이끌어 냅니다. 이것은 오랜 예술적 고뇌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우리들에게 주는 인상은 한없이 부드러운 숨길을 느끼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