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계(台溪) 하진(河溍) (1597~1658)의 시문과 그에 관한 글을 모은 것이다. 강백년(姜栢年)의 서문과 이야순(李野淳), 유심춘(柳尋春), 곽종석(郭鍾錫)의 발문이 붙어 있
태계(台溪) 하진(河溍) (1597~1658)의 시문과 그에 관한 글을 모은 것이다. 강백년(姜栢年)의 서문과 이야순(李野淳), 유심춘(柳尋春), 곽종석(郭鍾錫)의 발문이 붙어 있다. 광무 4년(1900)에 다시 중간하였다. 본집(本集)은 원집(原集)이 6권, 부록을 합쳐서 4책이다.
책판을 명석면 관지리의 태계정사(台溪精舍)에 보관하고 있다.
하진(河溍)의 자(字) 는 진백(晋伯)이요. 태계(台溪)는 그의 호(號)이다. 인조(仁祖) 2년(1624)에 진사(進士)가 되고 증광시(增廣試)에 갑과(甲科)로 급제 사재감군직장(司宰監軍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노친의 봉양으로 취임하지 않았다. 인조(仁祖) 14년(1636)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정언(正言), 헌납(獻納), 지평(持平)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뒤에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