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묘는 정 설(鄭 舌)과 부인인 강씨를 합장한 묘이다. 묘의 형태는 방형분(方形墳)으로 평면상 묘의 크기는 6.8×4.8m인데 부부를 합장한 묘인 까닭에 횡장방형(橫長方形)이다.
이 묘는 정 설(鄭 舌)과 부인인 강씨를 합장한 묘이다. 묘의 형태는 방형분(方形墳)으로 평면상 묘의 크기는 6.8×4.8m인데 부부를 합장한 묘인 까닭에 횡장방형(橫長方形)이다. 봉분은 후대에 증축하였는데 묘의 주위에는 박석으로 된 담장이 둘러져 있고 봉분과 석축담장 사이에는 박석(薄石)을 깔았다. 호석(면석)은 탑 기단부의 우주, 탱주와 같이 돌출되게 처리되어 있다. 갑석(甲石)은 전후 5매, 좌우 3매로 정연하다. 전면의 면석(面石)에는 많은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정 설은 영락계묘(永樂癸卯:1423년)에 부인인 강씨는 홍무을해(洪武乙亥:1395년)에 장사지냈다고 적고 있다. 면석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정 설은 진주정씨 공대공파 파조인 정 척(鄭陟)의 아버지로 고려말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데 공이 있어 수향반을 역임하고 태조가 등극함에 배알하고 서대를 하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아들인 정 척과 가족관계를 기록하고 있어 고려말 조선초의 진주지역의 가족사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며 조선초기 합장묘는 그 예가 드물어 묘제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