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35년(1540)에 나서 광해군 1년(1609)에 세상을 뜨신 조선조의 문신으로 자는 원용, 호는 영무성제이며 진주하씨이다.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명종 때 진사에 급제하였고 특천으로 진주에 있는 소촌도찰방이 되었고, 선조 26년(1593) 계사년 진주성이 떨어진 뒤 진주판관에 임명되어 흩어진 백성들을 불러모아 진주 재건을 시켰으며, 선종 34년(1601) 능성현령이 되었다.
그는 일찍이 남명 조식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할 때 선생의 "경의학설"에 전념하였고, 정구 최영경들과 더불어 성리의 학설을 강구하여 조예가 날로 깊었으며, 효도의 우애가 남달리 뛰어나 삼 형제가 항상 어머니를 떠 받들어 한집안에서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항상 웃으며 살았다.
오리 이원익이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진주가 함락된 뒤로 주민들이 흩어져서 수습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그가 능히 이 위급한 때를 잘 수습, 구제하였고 목사 이현, 현감 강득용과 더불어 다시 흩어진 의병을 불러 모아 왜적을 무찔렀다" 하였다. 일찍이 예산 현감 때는 청백한 관리로 조정에 보고되니 월사 이정규는 그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원컨대 형의 당에 올라 치리의 효험을 얻어보고 겸하여 빙설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노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