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막신쟁이 날이란 진주지구만이 쓰는 절기의 말로서 한겨울이 다가고 동지섣달 스무이튿날을 말하는데 겨울이 다 간 듯한 속에 마지막 제일 추운날을 말한다. 서부경남에서만 쓰는 절후로서 서울이나 그 외의 도시에서는 듣지 못하는 말이다.
우리가 음력으로 24절기를 따지는데 겨울철의 것으로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등이 있다. 나막신쟁이 날은 대한도 다 지난 다음 가장 모질게 추운 날씨를 말하는데 이 나막신쟁이 날에는 정말로 가난이 서럽고 모진매를 단돈 석냥과 바꾸어 맞다가 죽은 나막신쟁이의 애틋한 전설이 하나 있다.
지금부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기 수백년 전 말티고개 언덕바지에 마음은 착하기가 흥부보다도 곱고 사람됨이 유순한 나막신쟁이가 살고 있었다.
나막신이라고 하면 지금의 우화니 장화니 하는 것으로서 나무를 깎아 만든 밑이 높은 나무신을 말하는데 옛날에는 이것이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 신는 신이다.
살림이 구차하고 식구는 많아서 생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가난도 못 따라 온다는 속담이 있지만 못하는 사람이 한밑천 모아서 잘 살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막신이 잘 팔리는 여름도 가고 눈이 오는 겨울철도 다 지나 입춘이 오려는데 나막신도 팔리지 않으니 하루 세끼가 아니라 한끼의 입도 큰 걱정이었다.
장날이라 하나 별 신통한 수도 없이 돈 못 번 빈손으로 탈래 탈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마침 성내에 사는 부자가 어떻게 잘못되어 관가에서 곤장 서른 대를 맞게 되었는데 대신 매 맞을 삯 군을 찾는다는 것이다. 우연히 주막집 앞을 지나다가 이 말을 듣게 되었으니 끼니를 굶게 된 나막신쟁이는 귀가 번쩍 띄었다.
"여보게 박생원 성내 그 아무개 부자 있지 않나" "어! 있고 말고 그것이 어쨌다는 건가" "허-참 어떻게 된 셈인지 관가에서 매를 맞게 되었는데 미리 짜 놓았는지 대신 매맞을 사람이 나오면 대신 가서 매를 맞아도 된다네 그려" "여보게 그럴 수 있나 대신 매맞을 사람이 바보 아닌 다음에야 누가 공짜로 나서겠나-" "아닐세 미리 돈주고 짜놓은 것이라 매도 사려 때릴 뿐 아니라 곤장 서른대를 대신 맞아 주면 돈 석냥을 더 주겠다 네 그려-"
이런 수작의 말이 오고 가는 것을 듣고 있던 나막신쟁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들한테 달려가서
"여보소 에나 매를 대신 맞으면 돈을 석 냥 주는 거요?"하고 케어 물으니
"그거야 내가 돈줄사람이 아니니 잘 모르지만 오늘 저녁까지 관가 사람이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소" 아무튼 그 부잣집을 찾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대신 매맞을 사람을 찾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막신쟁이는 스스로가 돈석냥에 몸을 팔아 관가에 가서 매를 맞기로 했다. 물론 이때에 그 부잣집에서는 애처로이 생각하고 일찍 저녁을 먹여서 호출장을 대신 들려 관가로 보냈다. 평소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나막신쟁이가 한끼니를 잘먹은들 피골이 상접하고 영양실조의 몸이 갑자기 회복 될 수가 없었다.
부모와 아내,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 하는 일념에서 단돈 석 냥과 곤장 서 른대와 바꾸고 보니 그만 나막신쟁이는 매에 못 이겨 넘어져 넋을 잃고 말았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린 나막신쟁이가 말티고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매 맞은 것에 견디다 못해 죽고 말았다. 나막신쟁이가 죽자마자 이상하리 만큼 겨울날씨 치고는 매섭고 모질게 바람이 불고 추웠다. 집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은 밤이 되어도 착실한 집주인이 돌아오지 아니하자 찾으러 나왔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다음날 손에 돈 석 냥을 꼭 쥐고 있었으니 뒷소문과 함께 기둥을 잃은 온 식구의 슬픔은 어떠했겠습니까? 나막신쟁이가 죽은 그 날로부터 꼭 일년이 되면서 세세연년 반드시 가장 추운 날이 되 돌아 오니 언제부터인가 이날을 진주사람은 나막신쟁이 날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바로 동지섣달 스무 이튿날 음력으로 제일 마지막 장날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