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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들고 같이 성장하는 여성친화도시 진주

김 정부인

김 정부인 혹은 정부인 김씨
(金 貞夫人, 1843~1912)

김 정부인

우리나라 최초
남녀공학 학교를 만든 꼼쟁이 할매,김 정부인

진주 꼼쟁이, 꼼쟁이 할매로 알려져 있는 김정부인은 진주성 밖 진주군 대안면에서 무관 의 장녀로 태어났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혼례를 올린 부인은 혼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 지 않아 홀연히 사라진 남편을 대신하여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운 시집의 살림을 도맡아 꾸 려갔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모두가 기피하는 온갖 궂은일들을 마다하지 않으며, 억척같이 일한 김정부인은 평생 근검절약하여 거만금을 쌓은 노년에도 근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람이 지성으로 일을 하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다며 노동의 가치를 강조한 부인은 게으 르고 안일한 채 남한테 기대어 사는 것이야말로 천하에 수치스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있다.

김정부인이 살던 당시는 일제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때로, 일본인들에게 토지와 돈을 빼앗기는 등 지역 경제가 잠식당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우리가 잘 배우지 못한 탓이 라고 생각한 부인은 이러한 비극을 이겨낼 길은 오로지 교육밖에 없다며 힘들게 모은 돈으 로 교육 사업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였다.

아들뿐만 아니라 딸들도 교육시켜야 더 좋은 세상이 열린다고 확신한 부인은 진주제일보 통학교(현 진주초등학교)에 공사비를 지원해서 여학생 전용 교실 2칸을 지어 기증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1909년)를 만든 장본인이 된다. 교육이야말로 나 라와 개인을 위한 가장 큰 투자라는 평소 지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돈을 잘 쓰는 것은 모으는 것보다 어렵다.”며 단돈 일전을 쓰더라도 가치 있는 곳에 써야 한다고 강조한 부인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힘들게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가뭄이 나 흉년이 들 때는 창고의 쌀을 풀어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나눠주는 구휼사업을 했고, 인재 발굴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아 상업에 능력이 있는 인재를 선발하여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고향에 거금을 기부하여 공유재산으로 사용토록 하고, 마을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나룻 배를 마련해 주는 등 사회환원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으니 사람들은 진주 땅 곳곳에 송덕비 를 세워 부인의 덕행을 찬양했고, 고종 황제로부터 정부인이라는 봉작까지 하사받았으니 이는 우리나라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만석꾼이 되어 근검절약과 나눔의 미덕을 평생 몸소 실천한 꼼쟁이 할매 의 삶의 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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