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사 대웅전에 봉안된 이 여래상(如來像)은 높이 60㎝, 폭 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상태는 아주 양호한데, 머리에 상투모양〔肉髻〕과 구슬〔髻珠〕
성전사 대웅전에 봉안된 이 여래상(如來像)은 높이 60㎝, 폭 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상태는 아주 양호한데, 머리에 상투모양〔肉髻〕과 구슬〔髻珠〕이 표현되어 있고 입은 꼭 다문 모습이다. 옷자락(法衣)은 양쪽 어깨에 걸쳐서〔通肩〕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아미타여래의 9가지 손 모양〔阿彌陀九品印〕중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연출하였다.
불상의 배 안에서 불상을 만들 때 남긴 기록과 경전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이 불상은 1644년(인조 22)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성전사는 879년(신라 헌강왕 5)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우리나라를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하여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白頭大幹)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漢江) 이북인 서울 삼각산(三角山)에 한 지맥이 머물렀고 남강(南江)의 물을 끼고 있는 여항산에 와서 다른 한 지맥이 맺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도선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절의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조가 능양군(綾陽君)으로 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하여 국난 타개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이 절은 이것을 기리기 위해 인조각(仁祖閣)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도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