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열공 강민첨(963~1021) 영정은 고려 문종때 공신각에 모셔질 때 그려진 것이 최초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진주의 은열사에 소장되어 있는 은열공 강민첨 영정은 족자형태로 제
은열공 강민첨(963~1021) 영정은 고려 문종때 공신각에 모셔질 때 그려진 것이 최초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진주의 은열사에 소장되어 있는 은열공 강민첨 영정은 족자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복두(㡤頭)에 곡령대수(曲領大袖)를 입고 양손에 홀(笏)을 쥐고 있는 고려시대 백관의 차림이다.
영정은 비단〔絹本〕위에 세밀한 필치와 부드러운 선에 색채의 농도로 명암을 표현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화면의 우측상단에는 ‘고려병부상서강은열공상(高麗兵部尙書姜殷烈公像)’이란 화제를 쓰고 있다. 이 영정은 조선시대의 대부분 초상화가 좌안인데 반하여 우안이어서 고려시대 말기 초상화에서 보이는 자세와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은열공 영정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보물), 진주 은열사 소장본(2점), 하동 두방영당, 진주 산앙사, 김천 숙청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08년에 영정보수를 하면서 좌측면의 배접된 곳에 덮여 있던 화기가 드러났는데 「庚戌冬十月乾隆五十五年十六代孫○○○泳重摹 時年七十八 三十一代孫○○監○」라고 적혀있어서 이 영정이 건륭 55년(경술, 1790년) 12월에 모사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영정의 크기는 포장 비단을 포함하여 세로 187㎝, 가로 79㎝이며 화면은 세로 113㎝, 가로 56.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