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어류(朱子語類)는 본래 송(宋)나라 때 여정덕(黎靖德)이 주자(朱子)와 그 문인들과의 문답을 집성하여 편집한 50책이나 되는 거질(巨秩)이며 주자(朱子) 연구는 물론 성리학 연
주자어류(朱子語類)는 본래 송(宋)나라 때 여정덕(黎靖德)이 주자(朱子)와 그 문인들과의 문답을 집성하여 편집한 50책이나 되는 거질(巨秩)이며 주자(朱子) 연구는 물론 성리학 연구의 필독 도서다. 이 책은 선조(宣祖) 8년(1575)에 처음 우리나라에서 간행되었고 임진왜란 때 타버린 것을 인조(仁祖)때 영남감영(嶺南監營)에서 다시 간행했지만 또 타버렸다.
영조(英祖) 46년(1770)에 영남관찰사(嶺南觀察使)가 국가의 명에 의해 다시 간행하니 세 번째의 일이었다. 120여년이 지나는 동안 그것마저 파멸되고 끝내 없어져 1904~1905년 사이 진주 선비들에 의해 재간되니 2,076판이었고 이것이 여기 있는 주자어류(朱子語類) 책판(冊板)이다. 이 간행을 주도한 이들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하재곤(河載昆)을 비롯한 서부경남의 선비들이었다. 하재곤(河載昆), 하세진(河世鎭)이 주동이 되어 이도술(李道述), 허균(許均) 등 68명의 선비들이 힘을 모아 간행하였다. 판하본(版下本)은 이두훈(李斗勳) 소장본으로 하고 이도용(李道容), 정제용(鄭濟鎔), 하겸진(河謙鎭) 등이 교정본을 만들었다.
1904년 가을부터 약 1년 동안 산청군 시천면(矢川面)에 있는 대원사(大源寺)에서 판각하였고 하재화(河載華), 이기수(李祺秀) 등이 어류(語類)의 모든 서문과 발문을 덧붙여 완간하게 되었다.
이상규(李祥奎), 하용제(河龍濟), 하헌진(河憲鎭), 조창동(趙昌東), 이병하(李炳夏) 등이 힘을 써서 계를 모아 장판각을 뇌수산(雷首山) 덕천(德川)에 세웠다가 다시 이곳에 광명각(光明閣)을 짓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같이 큰 출판사업을 국운이 종말을 고하기 직전에 이루어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로서 당시 진주(晋州)를 중심으로 한 선비들의 문화의욕이 줄기차고 컸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목판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책판이라는 데 문화사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광명각은 수졸재의 뒤에 자리하고 있다. 수졸재는 조선후기 사곡의 하씨문중에서 대대로 은거 수학하던 곳으로 본래 본당건물이 있었으나 불타고 초석만 남았으며 수졸재만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계자난간을 둘러 운치 있는 건물로 마음과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