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제씨 쌍충비(諸氏雙忠碑)로도 불리는 이 비는 본래 진주성 안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관헌들에 의해 문산가도(文山街道)에 옮겨졌다가 1961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비각을 새
일명 제씨 쌍충비(諸氏雙忠碑)로도 불리는 이 비는 본래 진주성 안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관헌들에 의해 문산가도(文山街道)에 옮겨졌다가 1961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비각을 새로 지었다.
비의 형태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비의 형태로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키어 머리를 맞대고 중앙의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그 하단에 4개의 국화무늬를 조각하여 마무리하고 있다. 귀부(龜趺)는 이수의 조각이나 비의 규모와는 달리 등을 아무런 꾸밈이 없는 방형으로 처리하고, 돌출된 두 눈을 강조하여 토속적인 정감을 주고 있어 진주성 안의 다른 귀부들과 더불어 특징을 보이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임진왜란때 전공을 크게 세운 성주목사 제말(星州牧使 諸沫) 장군과 이순신 장군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제홍록(諸弘祿) 장군의 충의를 기리고 있다. 제말 장군은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 김해(金海), 의령(宜寧) 등지에서 전공을 세움으로써 곽재우(郭再祐)장군과 함께 조정에 알려지게 되어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임명되었으나 성주(星州)전투에서 전사한 인물이고 그의 조카가 되는 제홍록 장군은 숙부 제말 장군과 더불어 전공을 세웠으며, 이충무공(李忠武公) 휘하에서 싸우다가 정유재란 때에 전사하였다. 이에 정조(正祖)임금은 이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이조판서 서유린(吏曹判書 徐有隣)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게 하고 쌍충각(雙忠閣)이라 이름하여 진주성과 성주성에 각각 세우게 하였다.
두전(頭篆)은 송하 조윤형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