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석사는 신라 진흥왕 15년(55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으며, 문무왕(文武王) 2년(662)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이곳에서 강원(講院)을 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응석사는 신라 진흥왕 15년(55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으며, 문무왕(文武王) 2년(662)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이곳에서 강원(講院)을 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의 지공(指空)과 조선의 무학(舞鶴) 등 큰 스님들이 수행하였던 화엄대찰(華嚴大刹)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절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음전(觀音殿), 문수전(文殊殿), 극락전(極樂殿), 영산전(靈山殿), 나한전(羅漢殿)과 163개의 방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침입해 불상 밑에 숨겨둔 무기를 발견하고 절을 불살랐다고 한다. 영조 12년(1736)과 광무 3년(1899)에 절을 중건하였다.
이 대웅전은 두 차례에 걸친 사찰의 중건 때(1736년, 1899년)에 새로 조성되었으며, 이후 1983년에 재차 개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八作) 다포계(多包系) 양식의 건물이다.
기둥은 가운데가 약간 불룩한 배흘림으로 대단히 굵다. 지붕의 처마는 건물의 높이에 비해 짧으며 완만하게 처리되었다. 팔작다포계 양식의 건물이지만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느낌을 준다. 1983년에 개수하면서 중건 당시의 건물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도 대웅전은 정면과 우측면은 겹처마이고 좌측과 배면은 홑처마로 구성되어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으나 2003년 대웅전을 전면적으로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