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석은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의 문인으로서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1590년에 옥사한 수우당 최영경(守愚堂 崔永慶:1529~1590)을 위하여 세워졌다.
이 비석은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의 문인으로서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1590년에 옥사한 수우당 최영경(守愚堂 崔永慶:1529~1590)을 위하여 세워졌다. 최영경은 옥사 다음 해인 1591년에 무죄였음이 판명되었는데, 1594년에 선조가 내려준 제문(祭文)을 1821년에 돌에 새긴 것이 바로 이 비석이다. 이것은 원래 산청의 덕천서원(德川書院)에 세워졌지만, 최영경이 세상을 피해 수학하던 이곳 도강서당(道江書堂)으로 나중에 옮겼다.
이 사제문비는 영남사림파의 영수(領袖)였던 정인홍(鄭仁弘)이 역신(逆臣)으로 지목되어 몰락한 후 약해졌던 문풍(文風)이 19세기 초에 정인홍과 영남의 사림(士林)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다음에 중흥한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