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암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인 이정(李楨 ; 1512∼1571)의 시문집이다.
이 책은 1641년(인조19) 증손 함일(涵一)과 백서우(白瑞羽) 등이 편집, 간행하
『귀암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인 이정(李楨 ; 1512∼1571)의 시문집이다.
이 책은 1641년(인조19) 증손 함일(涵一)과 백서우(白瑞羽) 등이 편집, 간행하였고, 조경(趙絅)이 서문짓고 허목(許穆)이 발문을 지었다.
이정은 송인수(宋麟壽)로부터 배웠고 성장 후에는 이황(李滉)과 교유하였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1536년(중종 31)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 성균관전적에 보임되었다가, 예조정랑, 우부승지, 형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지내고, 경주 부윤으로 가서 서악정사를 세우고 후진교육에 힘썼다. 1563년 중앙의 요직에 잠시 머무르다가 고향에 구암 정사를 짓고 후진교육에 힘썼다.
문집을 살펴보면, 시(詩)에서는 도학(道學)에 관한 내용이 많은데, 「중용영(中庸詠)」 14수는 『중용』의 중요한 부분을 시재로 다루어 읊었으며,「잡영(雜詠)」에서도 도학자다운 시풍이 나타나 있다. 「계사(啓辭)」에서는 당시 가뭄이 심하여 가을이 되어도 추수가 가망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로(言路)를 넓게 열어 시정(時政)을 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면부제학소(辭免副提學疏)」는 사직소로 임금에게 거경지지(居敬持志)하여 불순한 풍속을 순화시키고 민생의 원한을 없게 하며, 도(道)를 밝히고 정의(正誼)의 학문을 권장하며 공사왕패(公私王覇)의 직분을 분변해 관리를 선택(善擇)하며 백성의 부담을 적게 하고 환과 사를 지어서 위로는 어버이를 섬기고 아래로는 자녀의 낙을 보게 한다면 백성들의 원망이 없을 것이라고 충간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 서지사항(書誌事項)
선장(線裝)1책,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 20.6 x 16.8 cm, 유계선(有界線), 10행18자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2엽화문어미(上下內向2葉花紋魚尾), 책크기 ; 26.6 x 20.6 cm.
서문: 조경(趙絅-1639), 발문(跋文): 허목(許穆-1640).
간기(刊記):숭정14년 정월일(崇禎十四年正月日) 사천구암서원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