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기록상으로는 고려 중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려 말로부터 조선 초기에 들어서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야가 확 트인 산꼭대기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一炬 또는 一煙〕,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개,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개,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개,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이곳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烽燧路) 중에서 동래 다대포(東萊多大浦)에서 시작하여 서울에 이르는 제2 봉수로에 속하는 곳이다. 이곳은 남으로 망진산(望晉山), 북으로 산청군 단성면의 입암산(笠岩山) 봉수와 서로 연결되었다. 불구덩이〔火口〕와 돌로 쌓은 축대 등 일부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발굴을 통하여 복원하였다.
● 광제산 봉수대 전달경로
대방산봉수 - 각산봉수 - 안점산봉수 - 망진산봉수 - 광제산봉수 - 입암산봉수 - 목멱산봉수(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