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정(隅谷亭)은 고려 말(高麗末) 우곡(隅谷) 정온(鄭溫) 선생이 은거하였던 곳이다. 선생은 고려 말 대사헌(大司憲)을 지냈으며 조선 태조(太祖)의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반대하여
우곡정(隅谷亭)은 고려 말(高麗末) 우곡(隅谷) 정온(鄭溫) 선생이 은거하였던 곳이다. 선생은 고려 말 대사헌(大司憲)을 지냈으며 조선 태조(太祖)의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반대하여 두문동(杜門洞)과 지리산(智異山) 청학동(靑鶴洞)에 은거 수양하다가 낙향하여 이곳에 정자를 짓고 우곡정이라 불렀다.
정자 앞에 못을 파고 주위에 백일홍 나무를 6그루 심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을 지켜 은둔생활을 하였는데 태조(太祖)가 사위 이제(李齊)를 이곳까지 보내어 초빙하였으나 차마 왕명(王命)을 거역치 못하여 청맹(靑盲)이라는 핑계로 사양하였다.
진위(眞僞)를 확인하기 위하여 송엽(松葉)으로 눈을 찔렸더니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선혈(鮮血)만 낭자했다고 전한다. 이 건물은 태조 2년(1393)에 건립하였던 것을 헌종(憲宗) 15년(1849)에 중수(重修)하였으며 1976년에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전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구조(三樑構造)로 팔작지붕이다. 중앙 어칸(御間)에 대청이 있고 좌우에 방이 있는 평면이다. 전면 뒷마루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으로 둘러진 누(樓)마루 형식이지만 지면에는 그리 높지 않고, 아궁이는 배면(背面)에 있다. 그리고 대문 밖 앞뜰에는 낚시하던 못이 거의 원형(原形)으로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