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하씨 무인보는 필사본으로 된 『진양하씨족보(晋陽河氏族譜)』이며, 크기는 39.0×23.0㎝이다. 내용 말미에 ‘병인삼월중수(戊寅三月重修)’라는 기록에 의거해 보면, 필사 시점은
진양하씨 무인보는 필사본으로 된 『진양하씨족보(晋陽河氏族譜)』이며, 크기는 39.0×23.0㎝이다. 내용 말미에 ‘병인삼월중수(戊寅三月重修)’라는 기록에 의거해 보면, 필사 시점은 1698년이나 1758년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이 하증의 현손 하응룡(河應龍, 1695∼1742), 5대손 하중지(河中砥:후의 河載岳:1737∼1800), 하증 동생 하협의 현손 하응회(河應會, 1696∼1747), 하응명(河應命, 1699∼1745)에 이르고 있는데, 이 중 글씨체가 원래와 다른 것도 있다. 또 경종(1720년 무렵) 이전에 태어난 인물 중 적지 않은 인물이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족보의 작성 시기를 1758년으로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원래 이 족보는 1698년에 작성되었지만, 이후에 일부 추가된 인물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족보는 하증이 편찬한 것을 저본으로 내용을 추가한 것으로 판단되며, 현재 단지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족보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외손은 3대까지 기록하고 있다. 후대로 오면서는 중요 계보의 인물이나 특정 인물에 대해서만 간단한 기록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이름만 적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원래 진양하씨 초간보는 1621년 창주 하증의 주도로 편찬되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1719년에는 하형에 의해 기해보(己亥譜)가 중간되고, 그 후 1770년 경인보(庚寅譜), 1820년 경진보(庚辰譜), 1898년 무술보(戊戌譜) 등이 간행되었다. 이 필사본 족보는 하증이 1621년에 만들었던 족보는 아니지만, 이에 가장 근접한 족보로서 당시 가족, 친족 제도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