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육(敎育)
고대로부터 자연적인 생존교육을 행해오던 우리민족은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체계적인 교육기관에 의한 교육이 시작되었다. 799년(소성왕원년)에 청주(지금의 진주) 노거현을 국학학생의 녹읍으로 정하였고, 고려시대에는 향교가 있어 은열공 강민첨장군이 수학한 기록으로 보아 학문을 숭상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림파의 권학결의 모임인 '금란계'가 조직되었고, 영남학파의 중심지로 해동의 추로지향(趨魯之鄕)으로 명성을 날렸다.
1895년 당시 도청 소재지였던 진주에 경남에서 처음으로 "진주 소학교"라는 근대식 학교가 들어섰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수많은 공·사립 학교가 생겼으며 특히, 일신재단의 설립은 진주인들의 교육에 대한 열성과 노력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자랑스러운 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일신재단은 일제의 갖가지 방해 속에서도 순수한 민간자본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는 오직 민족중흥을 교육에서 찾으려는 애국심의 발로요 표상이었다.
2. 문화예술(文化藝術)
전통사회에서의 문화예술은 극히 일부계층의 향유물이었으나 진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국가무형유산 진주검무, 국가무형유산 진주 삼천포 농악, 경상남도 경상남도 무형유산 진주 한량무, 경상남도 무형유산 진주포구락무, 은장도, 연관장, 목공예등은 무형유산으로 전래되고 있으며, 수많은 예인이 배출되었고 현재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전국 지방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는 1949년에 탄생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 이는 명실상부한 문화예술의 고장이라는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