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 복위 5년(1344)의 국사시에 장원급제 하였으며 공민왕 12년(1363) 전공정랑으로 있으면서 앞서 홍건적이 쳐들어왔을때 개성을 수복한 공으로 1등공신에 뽑혔고 이듬해 도원수부진무로서 원나라에 의해 임의로 고려왕을 폐하고 덕흥군 혜를 새 임금으로 세워 고려로 쳐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봉주에서 주둔했다. 공민왕 22년(1373) 강화만호로서 왜구를 방어하지 못했다하여 곤장을 맞고 일개 봉졸로 강등되어 종군하다가 곧 풀려나와 우왕 1년(1375) 전라도원수겸 도안무사가 되어 이듬해 왜선 1척을 나포한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의복과 술을 하사받았다.
이해에 임의로 정원외의 연호군과 별민군을 두었다하여 파면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 때 후임으로 온 원수 유영이 채 부임도 하기전에 왜선 20여척이 나주에 쳐들어와 우리 병선과 병영을 모조리 불태워버려 또한 이에대한 책임을 지고 하동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귀양에서 풀려나 계림원수로 다시 기용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