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3년(1677)에 나서 영조 12년(1736)에 세상을 뜨신 조선조의 문인 의사로 자는 춘경, 호는 서계이며 태안박씨이다. 숙종 32년(1706)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수사공이 일찍 침을 맞을때 아버지를 붙들고 우는데 의원이 시험삼아 말하기를 "네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맞겠느냐" 하니 그가 문득 다리를 걷고 의원에게 내밀었는데 그때의 나이가 겨우 세살때라 하였다. 하정의 문하에 와서 공부하는데 집안의 제삿날을 당하면 옆방으로 옮겨져 종일토록 사람들과 말을 나누지 않으니 선생이 학동들에게 말하기를 "태무는 너희들의 사표이니 나이 어리다고 해서 얕보고 홀대하지 말고 공경하여라" 하였다.
집근처에 음사가 하나 있었는데 매우 요괴한지라. 그가 노해서 이 음사를 헐어버렸다. 일찍이 옛절에서 글을 읽다가 어느날 승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가 깊은 밤중에 홀로 앉아 글을 읽고 있는데 무슨 물건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그 형용이 심히 추악하였다. 그가 천천히 말하기를 "너는 무슨 물건이길래 그렇게도 괴상하게 생겼으며,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느냐" 하였더니 그 괴물에 졸지에 자취를 감추었다.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이 터지자 창의하여 가정 수백인을 거느리고 창고속의 양곡 수백석을 내어 군량으로 썼으며 남은 재산을 다 털어서 다른 의병들을 도우고 격려하였다. 집안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걱정하는데 그가 태연히 이르기를 "임금이 급한데 가족걱정을 어찌 하겠는가" 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고을 사람들이 삼베 옷으로 복을 입었다. 성호 이익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지난 밤 꿈에 사람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영남의 백학이 죽었다 하더니 그 뒷날 박태무가 죽었더라" 하였다. 일찍이 누더기를 걸친 길손이 찾아와서 같이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길손이 그의 새옷을 바꿔입고 앉아 있었다. 그가 의아해 하지 않고 다른 새옷을 내다가 입고 그 길손을 접대하기를 너그럽게 하였더니, 그 길손이 일어나 큰절을 하며 말하기를 "그대는 참말로 덕을 쌓는 선비로다" 하였다.
영조 4년 이인좌의 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하였는데 그가 세상을 뜨신 해를 영조2년으로 기록된 것은 오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