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4년(1804)에 나서 철종 14년(1863)에 세상을 뜨신 조선조의 문신으로 자는 치백이며 전주 이씨이다. 헌종 4년(1838)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휘능 별검 전적, 감찰, 정언 등을 역임하였고, 홍문관 교리에 임명 되었으나 삼정의 문란을 개탄하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진주의 알뜰) 은둔 생활을 하였다. 이 무렵 마침 진주에서 민란이 터졌다. 이 소요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가 되어 그를 민란의 주모자로 몰아 고금도로 귀양하게 하였다. 그는 배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문에 이르기를 "나는 진주민란에 직접 관계한 일이 없으며 다만 주동자로 몰리게 된 이유로는 그 민란의 중심인물들인 류계춘, 박숙연 들이 모두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는 것과 또한 간악한 서리들이 미워하여 계획적으로 모함을 하여 보고한 탓이다" 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는 그때 사정으로 보아 멸문의 화가 밀어닥칠 것을 염려해서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