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4년(1549)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수찬을 거쳐 명종 11년(1556) 문과 중시에 다시 급제하여 지평 영월군수 강능부사 문학 승지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선조 8년(1575) 대사헌 지의금부사 좌참찬을 거쳐 병조, 이조, 예조의 판서를 거쳐 선조 20년(1587) 다시 좌참찬이 되었다. 그는 평소 당파 싸움에 염증을 느껴 이를 증오하여 동서인의 조정에 나선 율곡 이이의 태도를 존경하였다. 율곡이 죽은 뒤 그를 공격하는 무리들을 자신의 원수처럼 미워했었다. 그는 시문에 뛰어났으며, 또한 복상을 잘 하였으며, 연세의 미달로 기로사에 들 수 없었으나 임금의 특명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성품이 소절을 구애하지 않고 조정에 서서 임금을 섬기는 자세와 정사에 임하여서는 일을 처리하는 사이에 꿋꿋한 큰 절개가 있어서 모두 자기가 한 것을 져버리지 않으니 모두가 그를 따랐다. 시호는 효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