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대응이며 김해허씨이다. 그는 천성이 충의롭고 지략이 있었다. 영조 17년(1741) 무과에 급제하여 조성재의 누이를 맞아 아내로 하였다. 그러니까 정희량과는 동서이다. 그는 처남인 조성재와 동서인 정희량의 뜻하는 바가 사리에 어긋나고 있음을 알고 일체의 왕래와 서로의 소식마저 끊어 버렸다. 그러던 영조 4년(1728) 과연 그 두 사람이 두목이 되어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그는 분연히 일어서서 가동 수백을 군사로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켜 합천 고을까지 진군하여 처남과 동서를 토벌코자 하였으나 이미 두적의 괴수가 붙들려 목을 베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에 빠져 되돌아 회군하니 모든 사람들이 그의 나라 위한 큰 뜻을 흠앙하고 탄복해 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