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내에 있는 충의당은 공북당의 자리이다. 그 곳은 또 고려 시랑 하공진이 태어난 태지(胎地)이기도 하다. 그 터에 관아의 하나인 공북당을 지을 때의 일로, 공역으로 집을 짓는데 낮 동안 집의 뼈대를 지어 놓았다가도 이른 새벽에 나가 보면 집이 무너져 있었다. 이러한 일은 한번 두 번도 아니고 거듭되었다. 지어야 할 날짜에 못 짓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예 세울 수가 없게 되었다.
급기야 방백은 나졸들에게 일러 밤에 지키도록 하였다.
그 날 밤이었다.
밤중이 되자 한 장군이 위엄있는 장군복을 입고 나타나더니
"여기는 내가 태어난 자리인데, 너희들이 무례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느냐, 헐어도 또 짓고 헐어도 또 세우니 또 헐어 버리도록 하라". 하면서 호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장군을 옹위하고 있던 군사들이 달려들어 일시에 허물어버리는 것이었다. 밤을 지킨 나졸들은 방백에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죄다 보고했다. 그제서야 방백은 말하기를 "아! 우리가 잘못했다. 거란군이 침범하여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 가실 때 자신의 볼모조건으로 거란군을 철병케 하시어 구하신 그 어른의 태지에 우리가 집을 짓다니 큰 잘못이다. 그러니 그 어른 집부터 먼저 짓자".
그런 뒤로부터는 헐리는 일이 없었다. 공북당을 지으면서 시랑공의 집이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공북은 공진과 같은 탓으로 "진(辰)"자도 북쪽(북극성)을 뜻을 지닌 까닭이라 했다.